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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보는 해외 뮤지컬 시장 -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일본 다카라즈카 시스템과 토호 버전의 각색 (4)

by 헝뮤아카이브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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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의 해외 진출 및 연출 변화, 판권을 소유한 극장 혹은 극단을 소개하는 내용 이어서. <'검은 갈매기'에서 '엘리자베트'까지 : 오스트리아 황후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기원과 제작사>에서 발췌해서 흥미있는 부분만 소개하고 있었으나.. 다카라즈카 엘리자벳은 96년부터 올려서 역사가 길다 보니, 관련 글도 많더라고요.

여기선 <비엔나 뮤지컬의 발전 : 오스트리아에서 일본까지 글로컬라이제이션>, <다카라즈컬화의 각색 : 뮤지컬 엘리자벳을 예시로>,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 : 소녀가극이 재현한 제국 통합의 이데올로기>도 이것저것 발췌 예정.

저자가 다카라즈카 시스템에 좀 비판적인 시선이라서. 미리 적어둬요. 그리고 저도 토호 엘리 중 한 장면 안 좋아해서 거기도 불호 주의.

왜 여기까지 언급하냐면... 아 1888년에 문닫은 빈 궁정극장 막공으로 올라온 괴테의 이피게네 파이퍼랑 루케니 둘이서 봤대두~~~~ 친족간 희생제사 장면 보면서 파이퍼 울었대두~~~~ 이런 양심없는 날조썰 풀고 있으니 적당히 세상의 신빙성을 맞추기 위해.

* 명칭 구분하기 귀찮으니 뮤지컬은 '엘리자벳', 인물 표기는 독어식 (엘리자베트, 조피 등)으로 적을 예정
* 관심있는 부분만 후루룩 읽어서 오역이나 뇌내오피셜 있음. 이번에도 적당히 걸러듣기.


1. 일본 다카라즈카 엘리자벳의 시작


다카라즈카는 배우 전원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뮤지컬 가극단임. 60~70년대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여성국극처럼.
1996년도 처음 엘리자벳이 일본에 올라갔을 때, 빈과 마찬가지로 다카라즈카에서도 덕후몰이를 했음. 해당 논문엔 엘리자벳과 팬 컬트 문화도 부록처럼 언급되지만 이건 나중에 시간날 때 읽어보고...
당시 다카라즈카는 히트작들이 브웨처럼 몇 달, 몇 년씩으로 롱런하는 뮤지컬들이 아니었음. 한국처럼 이미 극장에 언제 무슨 작품이 올라갈 지 스케쥴이 다 예정되어 있었고. 연장 공연은 거의 불가능한 시스템이었으니.

한국에선 뮤지컬 기획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카라즈카는 극단이 판권을 가짐. 그래서 당시 다카라즈카 프로덕션은 같은 극장에서 평균 6주, 과거 같은 자회사였지만 독립한 토호 극단에선 최대 4주 올라감.
근데 예외는 있음. 토호 라이벌인 시키 극단은 전국에다 극장을 만들며 라이온 킹, 캣츠 등의 메가뮤지컬을 오랫동안 올리는 동안, 토호는 방송국을 스폰서로 둬서 DVD, CD가 잘 나오는 편이었음.

여담인데 먼나라 겁나먼나라 부다페 쪽엔 국립 극장에 후원하면 세금 감면해준다는 법이 있어서.. 여러 기업의 후원을 받음(그 중 하나가 방송국이었던지, 여기도 공영방송에 콘서트나 오페레타 공연영상이 TV2 방송에 나오기도 했음). 일본 쪽도 기업 후원과 보조금을 받아서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는 듯. 독뮤로 보는 뮤지컬 해외 진출 관련된 논문에 기업후원 시스템이 자세히 설명된 거 같지만 거기까진 관심없으니 패쓰!



1.1 다카라즈카의 역사 - <엘리자벳>에서 죽음이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다카라즈카 오페라 컴퍼니(TOC)로 불리지만 사실 오페라랑은 거의 관련없음. 한큐 철도랑 백화점 운영하던 고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에 이용객 끌어들이려고 신설 철도노선 종착역에 놀이공원이랑 극장 만들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고. 1914년 4월에 관광객을 이끌기 위해 20명의 여성들을 소녀가극단으로 모집한 게 다카라즈카의 첫 시작이었음. 초기 레퍼토리는 일본 전통 민속극이었으나, 기반이 잡히고 난 뒤의 공연 형식은 오페레타와 레뷰 기반의 서양극으로 바뀌고.

아 여기 설명 웃기다. '1629년 이후 여성 배우들은 가부키 극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극장에서의 매춘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 배역을 남자배우로 교체하는 건 문제 해결방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남자 후원자들은 남자들에게 똑같이 끌렸기 때문이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여성배우가 올라갈 수 없던 노, 가부키와 달리 다카라즈카는 점점 더 규모가 커져 1924년에 대극장 건설(3천석.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극장)에 낭만적인 러브코미디, 레뷰와 의상, 라인댄스, 섹스심벌 강조는 싹 뺀 라스베가스의 쇼뮤지컬 스타일을 추구했음. 주요 레파토리는 각색된 서양뮤지컬, 영화, 일본 만화였고.

또한 학생들은 음악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며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음. 현재 다카라즈카는 5개의 조(하나구미, 츠키구미, 소라구미, 유키구미, 호시구미)로 나뉘었는데, 하나구미랑 츠키구미는 1921년부터 존재했음.

거의 10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이는 곧 2차대전 이전까지 프로파간다 선전극도 같이 올렸다는 의미기도 해서... 물론 이 시기에 선전물이 아닌 게 어디있겠냐만... 이건 나중에 토호가 올린 하스 장면에서 다시 얘기할 예정.


가극소녀 애니메이션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규율은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 "로 언급됨. 만화 <가극소녀>에선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모티브로 한 '홍화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일상이 자세히 설명됨. 자세한 건 만화로 보세요! 앗 왓챠에도 가극소녀가!


그런데 논문 저자의 시선으로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근대의 엄격한 규율에 근거하고, 시험을 거쳐 입학했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자퇴하는데 과연 그렇게 큰 희생의 가치가 있을까..? 처럼 보는 듯.
학생들이..학교 청소를..?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도 안쓴다고..? 1학년은 혼자 학교 못나가..? 도시테..? 이 부분에 놀라고. 공동체 감각이 일본에선 중요하나봐.. 학생들에게 기준이 너무 엄격하지만 소년 합창단도 그런 거 있으니....쟤네 전통이라면야... 흐린눈으로 넘어가는 거 같아 좀 웃픔.

그리고 출연자가 감독에게 노래, 역할에 대한 해석에 대한 토론을 하지만 대부분은 감독, 안무가 , 코치가 모든 걸 결정해서 해석 방식에 대해선 자기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편이라는 내용도 있고. 이건 2002년에 적은 거라서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겠지만.

한국에서도 유명한 다카라즈카 톱스타 - 아마미 유키

다라카즈카에선 "카타"를 배우며 성별을 드러내는 행동, 자세, 발성을 배우게 됨. '젊은 여성들이 환상을 품을 수 있는 이상적인 남자'를 연기하기 위해서. 이는 의상에서도 마찬가지고.
다카라즈카의 남역들은 대부분 꽉 끼는 바지, 무릎까지 오는 굽있는 부츠를 신음. 왜냐하면 이상적으로 긴 다리는 현실과 대조적이며, 전형적으로 일본 남성들은 짧은 다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아 읽다가 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카라즈카 내부 시스템 상 높은 위치에 있으면 더 중요한 역할을 얻게 됨. 음학학교 졸업 후엔 입단해서 7년동안 하급생이란 이름으로 계속 공연하며 무대에 오를 수 있음. 과거엔 이런 시스템이 배우들을 결혼 적령기에 내보내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퇴단할 수 있는 방식도 결혼이었음)

학생들과 창립자 고바야시의 연대는 용어에도 꾸준히 남아있는데. 극단 소속 배우들을 '학생'이라 부르는 건 순수함,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음. 어라 이건 일본의 아이돌에게 요구하던 아마추어리즘과도 이어지네.
그러면서 학생들은 그를 "아버지"라 불었는데, 여배우들은 모두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야 한....우우 크리피...아냐 이건 100년전 얘기... 구시대의 얘기....




다카라즈카의 뮤지컬 특성은 모든 작품들이 각색되어 다카라즈카 가극의 형식을 따르게 함. 원래 속한 내용과 관계없이. 주 내용은 남녀 인물간 사랑이 메인이 되고.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프듀처럼 센터몰빵 시스템임. 그치만 센터는 고정되지 않고, 몇 년마다 각 조마다 메인배우인 '톱스타'를 뽑아서 그 배우가 모든 공연의 주연 역할을 맡게 됨. 톱스타가 된 배우는 몇 년간 커리어하이를 찍은 뒤, 극단을 은퇴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꿔서 다음 '톱스타'를 넘겨주는 시스템이고. 그래서 다카라즈카에서 올리는 작품의 메인 인물은 톱스타가 돋보일 수 있는 '남역(오토코야쿠)'이어야 함.
이러니 극장 측에서도 몇 년 단위로 새 톱스타를 내세우기 위해 새로운 내용의 뮤지컬이 필요했음. 그 때 엘리자벳은 다카라즈카의 니즈에 딱 맞았고. 그래서 다카라즈카에서 올린 <엘리자벳>은 엘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저승의 황제인 '죽음'이 주인공이 됨.


1.2 번외) 다카라즈카의 문화와 비판적인 시선

여기 논문은 빈판 우베팬들 얘기하면서 다카라즈카 배우들과 팬들 사이의 관계도 적었네. 거기도 유사먹는 덕후들이 있겠지. 그치만 건전한 가족 오락물과 유성애적 사랑을 강조하는 TOC 쪽이 그런 연구를 허용하지 않는 건 당연하고... 여기에 대해 연구하려는 학자가 있었나본데 연구협력을 제한한 듯.
배우와 팬들 사이의 관계 - 충성도가 높은 여성팬들이 있지만 동성애적 관계보다 팬심, 유사연애 그런 느낌으로 보고. 그래서 당시의 미혼 팬들 부모도 뭐..극 내용은 이성애와 건전한 오락물이니까... 돌덕질 하듯 열병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던 것으로 보임.


휴양지에서 보여주는 건전한 가족 오락극으로 시작한 다카라즈카는 일본식 디즈니로도 묘사됨. 섹스와 폭력이 없고, 베드신이 필요할 땐 조명 암전으로 넘어가거나, 등장인물들이 침실에 있는 장면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전연령에 맞춰 신중하게 보여주려고 함.

또한 다카라즈카 팬들의 사회 문화적인 언급기사도 인용하는데. '일본의 남성들은 지루하고, 아내를 위해 시간쓰지 않으나 다카라즈카는 남편들이 위협할 수 없는 곳에 있다. 다카라즈카는 여성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누군가는 어차피 공연 늦게 끝나니 남편이랑 보내는 시간이랑 상관없잖아요! 하는데... (남성)교수는 '다카라즈카는 낭만주의와 같다. 감성적인 로맨티시즘이지만, 감상자의 마음을 씻어주는 로맨티시즘이다' 라고 반박함.

즉 관객들은 좋아하는 배우를 절대 진짜 남자와 비교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에 중심을 둠.
다카라즈카가 보여주고 싶은 건 무엇이냐 -> 철저히 관객들의 니즈에 맞춘 것임. 여성의 소원이 이뤄지는 곳. 아름답고, 강하나 친절하고 로맨스에 진심인 이상적인 남자들이 있는 곳임. 아이돌 문화와 마찬가지로.

아, 출근길 퇴근길 팬문화도 같이 설명했네. 여긴 관심없으니 패쓰! 그리고 극장의 함성소리도.. 빈엘리 초연 이후 한 배우가 힘들었다고 언급했는데 '가끔 열성팬들이 과도하게 비명을 지르고, 박수치며 소리를 지른다. 다른 관객들은 왜 그런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빈 공연 중 경고받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다카라즈카 같은 경우엔 오히려 함성질러도 오케이였다고.
게다가 빈 극장과 달리, 다카 쪽은 dvd나 cd나 잘 내줬음. 게다가 다카 팬클럽도 회사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는데 덕분에 신규팬 유입이 잘 되어서. 둘 다 덕후몰이하는 극이었으나 팬문화에 우호적이면서 덕후마케팅을 한 건 다카라즈카 였다는 듯.


100년의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면서 젠더의 해방과 동시에 성역할 고정, 유성애적 사랑을 프로파간다 형식으로 바꿈으로서 가부장적인 체제를 견고히 지킨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지만, 여전히 다카라즈카는 여성들의 로맨스와 꿈을 충족시켜주는 공간으로 남아있음. 거기에서 다카라즈카의 엘리자벳이 시작 된 거고.



2. 다카라즈카의 엘리자벳 공연

1996년 당시 포스터


1996년 다카라즈카 엘리자벳 초연 감독은 코이케 슈이치로였음. 한국에서 모차르트! 5연 연출 맡았던 그 사람 맞음. 당시 코이케는 다카라즈카 신작으로 올릴 공연을 찾고 있었음. 근데 이 과정이 겁나 빠르게 진행됨.
1994년에 처음으로 엘리 입덕한 뒤, 바로 다음 해인 95년에 vbw와 일본에 어떻게 올릴지 협상 시작했음. 빈 첫공 3년 뒤인 1996년 2월 16일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초연 올릴 정도로 행동력 있는 사람이었고. 이야 자본이 있는 덕후는 역시 달라.

코이케는 빈판 엘리자벳이 지닌 작품 잠재력을 인식했지만, 동시에 문제점도 함께 알고 있었음. 빈 버전의 스토리는 아시아 관객들이 줄거리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당시 합스부르크 역사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던 만큼 친숙치 않았던 배경인 것도 한 몫 했음.
게다가 특정 농담, 표현은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ex. 관료집단 소개 등), 음악과 세트디자인은 어찌 할지 걱정이었음.
이런 문제점으로 엘리자벳이 아시아. 특히 일본에선 바로 올릴 수 없다고 판단한 코이케는 빈 버전을 다카라즈카로 가져옴. 사실상 코이케가 감독이자 최고권한자나 다름없어서 밀어붙였... 이야 진짜 성덕이었네!

다카라즈카 버전을 위해 새 음악이 추가된 게 이런 맥락이었음. 그게 론도였을 뿐이지...론도는 죄가 없.....어....아마.....그리고 죽음 얘가 메인인데 너무 적게 나온다! 늘려! 하면서 등장 장면을 늘리고,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부분들 제거하면서(성병, 요제프의 바람 등) 많은 각색을 거침.

코이케가 2000년 토호(여긴 빈판처럼 죽음이 남배우임)에서 올리며 이렇게 말한 모양인데,
'사실 이건(=원판 공연) 다카라즈카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적용시켜야 했다. 알 수 없는 서양의 재료로 만주를 만드는 것처럼.'
그러면서 본인을 케이크 가게 장인이라 했다는 듯. 서양의 마지팬으로 일본의 만주를 만들 수 있어!! 라면서. 거 묘사 후덕하구먼....

이후는 당시 다카라즈카의 각색 및 무대의 변경점. 저자는 다카라즈카 초연은 못봤지만 당시 무대 재구성 위해 당시 엘리 배우와의 대화, e메일, 공식 녹화를 인용했다구먼 멋진 연구자!




2.1 다카라즈카의 무대디자인, 의상, 화장


오하시 야스히로가 맡은 다카라즈카 엘리자벳 무대는 합스부르크 - 죽음의 영토, 2개의 세계로 나뉨. 이 지하 세계는 다카쪽 플북에선 '죽음의 세계'라고 부른다는 듯.
다카라즈카판에선 죽음을 하데스와 같은 저승의 신으로 보고, 그 세계를 저승으로 보고 있음. 빈 버전의 추상적이고 기괴한 오브제보단, 현실적인 무대에 익숙한 다카라즈카 관객들을 위해 대부분 바꾸고, 남아있는 건 미로처럼 있는 거울, 매직 미러 하우스만 남게됨 (거울 뒤에 갑자기 등장하는 그거)


의상은 역사적인 거 그대로 가져오려고 했다는 듯. 웅장하고 크게 부풀린 드레스에, 특히나 1막 마지막 드레스는 수없이 얇은 명주천을 써서 뿌왕하게 만들었음. 그리고 몇 몇 의미있는 부분에선 빈판의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함.


다카라즈카 오토코야쿠스 복식 관례에 따라, 죽음은 롱부츠, 타이트한 바지, 슬림한 핏의 겉옷을 입고 등장함. 게다가 다카라즈카 버전의 죽음은 검은 깃털의 날개를 양옆에 달고나오면서 인상적인 첫등장을 보여줌. 가끔은 검도 들고..네? 검요?? 아 이거!
빈판과 동일하게 주요의상은 검은 색이나 등장에 돋보이기 위해 화려한 장식이 달린 디자인임.


그리고 무대화장.. 오 무대화장까지 얘기하네. 흥미로워라. 모든 여성 배우들은 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뜨며 크고 동그란 눈화장을 한다는데 아 이건 서양인의 시선에서 본 아시아인의 특징이자나 이건 패쓰!




2.2 다카라즈카 엘리자벳의 각색, 장면변화


다카라즈카 버전은 많은 장면에 변화가 있었고, 일부는 일본이 만드는 해외배경의 제작물에서 비롯된 클리셰도 있었음.
먼저 당시 남역 탑스타였던 이치로 마키를 위해 쿤체와 르베이가 "사랑과 죽음의 론도"를 썼고....그게 부제가 되고.... 앗......아앗.........다카에선 남역의 등장분량이 중요했기에, 빈판과 달리 20분 나오고 끝이 아니라 다른 장면에서 더 많이 등장함.
결혼식에도 나오거나, 엘리 곡 중 하나는 죽음의 론-도rep으로 끝나고.... 커피하우스와 밀크의 마지막 장면도 죽음이 등장하며 사람들을 선동함. 그 외 2막 이옌에서도 등장하고.
하나의 죽음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토토라는 유령이!

그럼에도 톱스타의 등장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는 의견도 있었다는 듯. 아래부터는 빈판과 달라진 다카라즈카 엘자벳 만의 내용임.


- 슈타른베르크 호수 : 론도


밧줄 타다 넘어진 엘리는 죽음과 그의 천사들에 둘러싸인 채 마치 오페라의 유령처럼 거울 미궁 속에서 깨어남. 그리고 죽음은 엘리가 요미노세카이에 왔지만 그의 프로즌 아이스 하트를 녹였다며 론-도를.... 패쓰!! 패쓰!!!!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론도는 캐붕이라고 몹시 싫어한가 봄. 내적악수를 청하고 싶군요. 그 곡은 죽음을 상사병 걸린 얼간이처럼 묘사해서 그를 약한 입장에 두도록 만듦. 그래서 이후 공격적인 연인처럼 묘사하는 다음 장면들의 개연성이 떨어지나 로맨스를 중시하는 다카라즈카라면 어쩔 수 없지....시무룩하는 게 글 너머로도 느껴져서...
오 하지만 이제 모든 버전이 론도에 침식되었고 2020년엔 멘헤라 라는 게 생겼는걸요 하다가 아 멘헤라 죽음이라니 진짜 끔찍한 조합이다 생각을 멈춤.

여튼 저자는 일본판은 엘리와 죽음 사이에 로맨스와 트루-럽을 끌어내려고 하네여 이런 해석도 있구나 하지만 전 안먹을래요 하는 중인 듯. 마치 헝엘리랑 헝라키 좀 드셔보라고 이런 글 쓰며 영업하는데 오 세상엔 그런 것도 있군요 외면하는 지인들 생각 나서 눈물 좀 흘리고.

어쨌든 다카판은 빈판과 달리 세계와 제국의 몰락에 대한 우화가 아니라, 사랑의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음. 그래서 엘리 부제도 ~사랑과 죽음의 론도~였고. 일본에서 각색된 다른 곡들은 독어 원곡과 비교하면 무대에서 일어날 일들을 더 생생히 전달하려고 함. 예로 죽음의 세계에서 떠나는 엘리를 향해 이곳을 떠나면 넌 나를 기억못하겠지 라고 말하는 죽음이라던가.



- 쇤부른 궁전의 홀 : 모든 질문은 던져졌다 & 마지막 춤


결혼식 깽판 장면에서 다카 제작진들과의 의견충돌이 있었던 모양이지만...(아마 추가된 장면이 사족이라고 여겼던 거 아닐까) 새로운 작곡을 통해 작품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톧과 엘리와의 짧은 대화를 넣음. 게다가 '모든 질문은 던져졌다' 에서도 죽음이 등장해서 모든 불행은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어투로 말함.
그래서 삶에 지친 사회가 아니라, 마치 합스부르크가 끝나길 바라는 죽음의 노래처럼 보임. '우리는 조금씩 재앙의 원인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죽음이 말하는 것도 다카라즈카에서 추가된 각색.

마지막 춤.. 그러니까 사이고노 단스... 영어 표기도 같이 적어줬네 친절해라... 엘리와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 하객 사이의 대화가 오가는데, 그동안 엘리는 어렸을 때 마주했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남. 예로 죽음을 향해 미소지었다고 하는 유언비어에 거짓말! 외치는 엘리라던가. 황후로 살기 빡빡하다. 한 번 웃어주었다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가 붙다니.
여기선 두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음. 엘리가 톧을 알아보지 못하고 원격조종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빈판과 달리.


- 난 나만의 것


조피와 요제프와의 논쟁 이후, 엘리는 자살을 생각하며 단검을 빼어들지만 곡 마지막에 다시 칼집에 집어넣음. 살아남아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통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롬쥴 생각나는군요 감성적이야.


- 결혼의 정거장 & 데브레첸

이 장면부터는 당시 다카라즈카의 "건전한 가족 오락"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나치게 슬프거나 도덕적인 비난의 여지를 받을 수 있는 장면은 삭제됨. 어린 조피의 죽음을 알게 되는 데브레첸 장면은 사라지고.
대신 독립 원하는 헝가리 3귀족들이 더 중요해짐 (바티야니, 카롤리, 안드라시 - 안드라시는 당시 이름도 없었음). 다카라즈카 특징 상 남역 조연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지나가는 귀족3에서 쟤네 좀 중요하긴 한데 그래서 뭐하냐 물으면 아무도 모를 귀족3으로 중요도가 올라가고.
바티야니와 카롤리는 실제 전기, 헝판과 마찬가지로, 헝가리 혁명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과 조국 독립에 관한 열망을 얘기함.


헝가리 사람들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환영하는 대신, 반란을 일으키며 헝가리 국기를 흔들고 총격사건이 일어나지만..엘리가 망토를 벗어 헝가리 삼색기 드레스를 보여주면서 Eijen Hungary! 외치면서 해당 나라에 대한 애착을 보여줄 때....헝가리 사람들은 그녀를 응원...... 40년대 프로파간다 선동극 같은 연출 우우.....그치만 킵고잉.....토호 연출이 여기서 비롯된 거였구나....

여기선 죽은 조피를 보여주는 다른 장면들과 달리, 엘리의 지지율과 국가 위기를 극복하면서 그의 첫번째 승리를 나타냄.
대신 이 장면에서 죽음은 헝가리 3귀족들에게 다가가 빈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추진하도록 속삭이고.


- 행복한 종말 : 비엔나의 커피 하우스


빈에 도착한 헝가리 귀족들은 오스트리아 혁명 지지자들(나중엔 루돌프 친척이자 신문사 사장인 스젭스로 소개됨. 더라키에도 나온 걔)과 처음으로 접촉함. 여기서도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죽음임. 죽음이 서로를 소개시켜 줬기 때문임. 이야 그정도는 나레이터 시키지 잡일도 본인이 척척 하고 좋은 상사야!

결탁한 혁명준비자들은 밀크에서 분노한 민중들에게 찌라시를 배포하고 계획을 추진하는 장면으로 다시 나옴.


- 엘리자베트의 탈의실 : 1막 마지막

다카에서 처음으로 난나것에 등장하는 죽음의 장면은 이후 다른 프로덕션에서도 적용됨. 남편과 연인 사이의 엘리 입장을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원래는 엘리의 마지막 대사를 쳤으나, 일본에서는 죽음이 마지막 대사를 침. 이 순서는 공연의 탑역 스타로서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것임.



- 대관식에서의 부다

상황에 맞는 다카 사진을 못찾아서 토호로 가져옴


코이케는 부다의 대성당앞에서 다양한 나라(플라멩고, 자유의 여신상) 등의 화려한 의상과 전형적인 전통복을 보여줌.. 대체 왜..? 여튼 대관식에서 두 사람이 등장하며 죽음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됨.


- 엄마 어디있어요 : 호프부르크 궁정의 방


여기서 나오는 어린 루돌프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린 다라카즈카 배우가 맡음. 하지만 배우가 작지도 않고, 아이처럼 옷을 입은 것도 아니라서, 일부러 9살 왕세자란 걸 보여주기 위해 어린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일부러 보여준다는 듯.
빈판 초연에서 다음장면은 정신병원 이었으나, 다카라즈카 버전에선 '혼란한 세월들' 다음인 중후반 쯔음에 등장함. 이러한 장면 순서 변화는 네덜란드와 에센에서도 이어지고.


- 볼프 살롱 / 엘리자벳의 체조실


요젶이 간통을 저질러 성병을 옮겼다는 건 건전함을 추구하는 TOC에겐 에구머니나 음란해라! 싶어서 해당 노래는 볼프 살롱이 아니라 호프부르크가 배경임.
황제를 위한 궁중예술인 척 하다가, 마지막에 요젶은 발레리나와 함께 춤을 춤. 마치 마이얼링 왈츠의 단순화 된 멜로디에 맞춰서. 그래서 두 사람이 무대를 떠나며 키스하기 직전에, 루케니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음. 그래서 엘리는 사진을 통해 남편의 바람을 알게 됨. 루케니 이제 사설탐정 역도 하고 있구나.

죽음이 의사인 척 왔을 때, 님 성병ㅇㅇ 하지 않고 직업병, 프랑스 병이라고 애매모호하게 내린 것도 건전한 가족 오락을 위한 우회적인 표현이었음.
엘리는 죽음에게 '당신이 죽음이라면 날 데려가라. 그러나 난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라면서 거절하고. 1막 난나것에서 보여주던 칼이 등장하지만 다시 쓸 일은 없고.. 거 단검자살이라니 극단적이야.


- 혼란한 시절들

여기서는 어린 루돌프와 조피까지 엘리의 행렬에 불만스럽게 따라간다는 듯. 그러다가 조피 등장 이후로는 죽음의 천사들에게 끌려가고. 요제프와 루돒 간의 짧은 만남이 있음. 반면 여기선 루케니의 '거울아, 거울아'와 '사냥'장면은 삭제됨. 그리고 '아무것도'도 짧은 버전으로 나오고.



- 그림자는 길어지고

여기선 초연과 달리 황태자와 황제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소개됨. 여기서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문제를 인정하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루돌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세상은 가라앉고 있으나, 나는 키를 잡을 수 없다.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며.. 아 여기는 빈판 가사 따라갔구나.

죽음의 주선으로 루돌프에게 헝가리 혁명가들 소개시켜주고.. 음모장면에선 루돌프가 헝가리의 왕으로 즉위하는 장면을 마치 환상처럼 보여주고... 하지만 이 장면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건 여전히 죽음이고..그러다가 애비에게 들키면서 끝.

그리고 wie du와 하스는 다카라즈카에선 삭제. 저자는 아마 엘리의 강령술 취미와 민족주의의 행진이 일본 관객들에게 왜저래? 싶어서 뺐던 거라고 말했지만.... 아뇨 그들은 이후 하스에서 하겐 크로이츠 깃발을 펄럭이는 연출을 넣게 됩니다..


그 이후 장면은 변화가 없으나.. '추도곡'이 끝난 직후 또다시 론도가 아악 왜 계속 론도야 아아악

그 외 '한밤의 조각배'에선 엘리와 죽음의 연관성을 보여주면서 엘리의 주제가 됐던 크리스토마노스의 일기 내용을 인용함.

요젶 : 당신의 항구는 어디있소?
엘리 :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군가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요젶 : 그게 누군가요
엘리 : 언젠가, 그는 나에게 올 거예요.


- 침몰하는 배

여기선 엘리의 불행한 친척들의 죽음이 사라짐. 다카라즈카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엘리가 곧 세계 종말을 초래한다는 비유가 빠졌기 때문에.


- 에필로그


여기서 루케니는 황후가 머무른다는 걸 신문을 읽고 확인하며, 느린 동작으로 엘리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고 퇴장. 이후 목매달러 재등장하지 않음.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등장하는 죽음과 함께(안개와 흰 의상은 덤!) 엘리를 품에 안으며 상승하는 무대에 의해 공중부양하며 엔딩. 로맨틱한 결말이야!



그리고 다카 극 특성 상 마지막에는 거대한 대계단과 함께 피날레(우리나라로 치면 커튼콜)이 나옴.
커튼콜이 20분간 이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피날레 음악은 본공연 노래를 각색하며, 가끔 배우들이 본인 배역이 아닌 곡을 부르기도 함. 예로 난나것을 부르는 요제프라던가.
보통은 니반테(탑스타 다음의 남역. 다카 엘리에선 요제프)의 솔로곡 -> 라인댄스(입단 1~5년차 하급생도들) -> 남역들의 군무(무대의상대신 연회복 입음) -> 듀엣댄스 -> 대계단으로 이어짐.


아 그리고 또다른 특색으론 배우들이 들고 있는 꽃다발임. 이건 공연마다 다르지만 엘리에선 합스부르크 독수리문양이 장식되면서, 리본을 길게 늘여뜨려서 마무리 동작을 강조할 때 도움이 된다는 듯. 그리고 마지막엔 거대한 깃털로 장식된 죽음이 등장하면서 마무리.



저자는 여기서 서양의 뮤지컬 극장이 정교한 무대기술, 의상으로 광학적인 미감에 의존하려는 것처럼, 다카라즈카는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주장없이 - 저자는 일본 관객들이 오스트리아 황후의 삶에 현재 일본 황실의 삶을 투영시키지 않았다는 의견인가벼) 건전한 가족오락극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현실과 유리된 세상으로 2시간 반 동안 데려간다고 말함. 나레이터인 루케니는 엘리자베트의 인생 이야기 뿐 아니라 사랑이야기도 함게 전달하면서. 인외 저승의 신이 황후의 사랑을 얻는 방법으로.

다카라즈카에서 죽음의 등장목적은 엘리를 사랑하고 함께 있는 것임. 그 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로맨스한 인물을 관객들이 바라고 있기 때문임. 다카의 핵심목적은 러브 스토리라서, 엘리자베트와 세계 종말의 비유, 시대를 앞서간 현대적인 여성이나 결국 아무것도 못했다는 모순은 축소됨. 그래서 다카라즈카가 올린 엘리자베트는 역사적 황후의 이야기보다는 레뷰의 환상적인 모험극에 적합함.
아래는 이후 엘리자벳을 올린 다카라즈카 각 조 별 특징.


호시구미

호시구미 &amp;amp;amp;amp;amp; 유키구미의 죽음


96년 말 호시구미가 올린 <엘리자벳>은 초연이었던 유키구미와는 약간 달라짐. 의상이라던가, 남역 가발이라던가.


소라구미
엘리 사후 100년에 일본에서 다시 올라옴. 1998년이네. 초연 때의 배우들이 다른 배역으로 다시 오고, 의상은 좀 변경되었지만 코이케가 합스부르크에 저항하는 장면 넣은 것 외엔 크게 달라지진 않음.

하나구미
2002년 버전으로 돌아왔지만 큰 변화는 없음. 코이케가 모촤 초연 올리고 있어서. 그리고 탄젠빌이 이 때 처음 추가.



이렇게 각 조마다 올라왔던 <엘리자벳>은 베르사유의 장미와 함께 2003년까지 가장 성공적인 다카라즈카 공연이 되었음. 2002년 10월에 도쿄에서 모차르트가 초연한 뒤, 당시 오스트리아 대사관도 vbw의 수출은 놀라운 성과였다고 말함.
이는 곧 극 상영권을 판매하면서 대다수의 권한을 현지 프로덕션 팀에게 맡기고, 극단 창립자인 고바야시 이치조의 "현대와 전통을 결합하는 목표"와 매우 근접했기 때문에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사랑 이야기로 각색해도 흥행할 수 있었음.


그리고 아래는 토호극단이 올린 엘리자벳에 관한 이야기.


3. 토호 극단 : <엘리자벳>을 위한 신곡

토호는 위의 다카라즈카 만들었던 고바야시가 30년대 중반에 영화, 연극 사업을 위해 인수한 것임. 여기서는 남녀배우 모두 무대에 오름. 2차대전 이전까지는 한큐의 자회사였지만, 이후 회사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가고 있음. 아마 익숙할 이름일텐데 일본에서 제일 큰 영화배급사 거기 맞음. 고바야시 투자아래 구로사와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나 고질라도 제작되었고. 63년대 마이페어 레이디 일본 초연 이후 뮤지컬쪽 제작도 본격적으로 진행함.
현재는 이 회사가 제국 극장, 닛세이 극장 (프랑켄이랑 웃는남자 일본에 올렸던 거기)랑 오사카의 드라마시티극장 소유도 하고 있고. 여기는 극 올리는 기간이 1달 남짓으로 굉장히 짧은 편임.


여긴 2000년에 올라와서 다카라즈카 버전을 베이스로 하지만, 빈 버전을 따르려고 했음. 그래서 다카라즈카의 꿈과 환상을 위해 삭제된 얘기가 포함되고, 엘리자베트가 다시 주인공이 됨. 그러면서 사랑 이야기는 비슷하게 흐르나, 황후의 개인적인 투쟁과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함.

이 때도 감독은 다카라즈카와 동일하게 코이케였지만,이젠 TOC의 도덕적인 요구에서 벗어나 죽음의 춤을 위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음. 그래서 무대 디자이너는 환상의 동화속 세계가 아닌, 공주가 황후로 되는 것은 동시에 죽은 자들의 제국과 함께 오스트리아 제국이 동시에 붕괴하는 걸 보여주고자 했고. 그리고 TOC보다 덜 뿌왕하게..키치적인 부분을 줄이고, 죽음의 코트도 좀 더 심플하게 바꾸고, 헤어스타일도 백금발로 바뀌었다는 듯. 아 그래서 같이 실린 예시사진이 부장토드였어요 아.....


이 때는 다카라즈카에서 죽음을 했던 이치로 마키가 엘리로 무대에 올랐고. 당시 호불호는 갈랐지만 죽음에서 엘리자베트로, 서로 다른 남녀의 두 주연을 연기하는 건 상당히 강렬한 경험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그 외엔 대부분 다카라즈카의 순서와 비슷함. 아 그리고 토호에만 생긴 곡은 이치로 마키를 위해 작곡된 "꿈과 현실 사이"였음. 2막에 삽입된 이 곡은 죽음을 향한 갈망과, 내면의 투쟁 사이에서 갈등하는 곡인데 일본어는 못찾아서 독어버전으로 가져옴. 번역 출처는 여기

너무 일찍 태어나버린 나는
이 세계에서 길을 잃었다.
꿈과 삶 사이에서.

자유롭고 당당한 갈매기처럼
바다 위로 드높이
나는 홀로 날개짓한다.
꿈과 현실을 뚫고.

여기서도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엘리의 한탄과 크리스토마노스의 일기에 적힌 갈매기를 언급하는데, 일본판과는 가사가 다른 듯. 일본 가사는 여기 링크 에서 확인할 수 있음. 아니 헝가리는 론도 빼고 이 곡을 가져오지 대체 왜....






여기선 불호언급 주의. 토호는 헝가리에서 변경한 사항을 채택, 빈 버전을 따르면서도 각색되었는데, 최근에 추가된 장면이 하스임. 그리고 이 장면은..... 아 코이케가 부활시켰냐....? 진짜....? 이 장면 대본을 읽을 때마다 민족주의를 배운 심장이 몹시 아니꼽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요제프와 루돌프가 논쟁하면서

시위대 : 비엔나 인구 23%가 독일인이다!
요제프 : 그 무슨 소리, 제국 내 모든 인종이 평등하다!
시위대 : 황제는 순진하다 합스부르크 타도!
프로이센과 함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를 돌려받아야 한다!

이 무슨 개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젶 대가리를 꽃밭으로 만들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걍 웃다가 쇠네러 복장한 루케니가.... 어느순간 히틀러 콧수염에 나치제복으로 등장하는 걸 보고 아시발 루케니에게 나치묻었어 외치며 정신을 잃었다가 눈떠보니 2023년이 와버림. 정신차려보니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학 책을 품은 채 쓰러져있더라. 토호판은 지금 막스가 요젶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있다고 까네 껄껄 재밌다 웃을 때가 아니었음. 헝가리 독립 얘기 강화하는 걸 보고 아 뭔가 찝찝한데 외치던 마음의 소리를 들었어야 됐는데.


하스는 밀크와 음계가 비슷한 선동곡임. 독일어권 연출에선 가상의 깃발을 휘두르며 파시즘의 도래를 보여주고, 헝가리에선 책을 불에 태우며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영향받은 민중들(그게 곧 공산주의의 역사로 이어지고)을 보여줌. 그 외 다른 나라는 모르겠는데 하스는 이거 옛날 얘기 아님ㅇㅇ 우리 얘기여ㅇㅇ 자기 나라들의 20세기 흑역사를 까발리는(겸사겸사 루돌프도 괴롭히고) 장면이라고 생각함.
오스트리아에선 80년도 이후로 각종 대중 매체에서 외면했던 2차대전 얘기를 다시 논의해보자는 분위기였고, 92년도에 나온 엘리에서 이 장면이 있는 것도 그 때의 맥락에서 이어진 거고.

그런데 토호 연출에선 루케니가 쇠네러 -> 히틀러 복장을 입고 일본 극우 억양을 내며 비꼬는 장면이나, 루돌프가 뜯어버리는 거대한 나치깃발 뒤로 죽음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식민지 시기 역사수업을 받았던 한국인의 핏줄이 몹시 아니꼽다고 외치고 있어서... 뭐 할 때마다 욱일기와 다이쇼로망, 나치제복 지뢰가 터지던 겜덕의 빅데이터가 저거 걍 멋있으라고 올린 거 아니냐는 외침이 들려와서...

아마 자칭 케이크 장인인 코이케는 94년부터 엘리덕질을 하면서 하스를 본인 나라에도 넣어보고 싶었을 거임. 근데 그냥 올리면 이게 뭐야? 와 그렇군요 하와와 박수 짝짝 할 거 같으니 하겐 크로이츠라는 강수를 둔 거 같은데... 확실히 충격적인 장면이면서 동시에 현지의 비판도 꽤 받았었고.

위에 적었듯이, 다카라즈카와 토호 역시 아시아권 제국주의에 앞장섰던 일본제국의 프로파간다 극을 올렸다는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음. 40년대 이후 만들어진 극장이라 태평양행진곡 / 군국여학생 / 만주에서 북지로 등의 대동아공영권, 2차대전 추축국을 우호하는 선동극들을 올렸기 때문임. 과거 다카라즈카가 엘리에 추가한 피지배국 독립과 제국주의에 관한 내용은 타자화된 환상과 탈정치가 곁들여져 안전하게 가고자 했음.

그런데 90년대에는 해당 장면이 아시아권에선 친숙치 않아 뺐다고 하더라도, 21세기에 연출에게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일본에서 이 장면을 넣으며 2차대전 나치! 무시무시한 유럽의 역사! 남일인 척 타자화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함. 게다가 루돌프의 자살이 결과적으로 그 다음 황태자인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 때문에 1차대전을 불러온 거라서..
옆에다 주원상 이케~~ 하면서 욱일기 찢는 거라도 보여주던가 싶었지만 또다른 연출 의도가 있는데 못찾은 거겠지. 하지만 여전히 아니꼽다!



뭐하다 여기까지 왔나 원래는 헝엘리 얘기 있길래 써본 거였는데. 여튼 다음은 헝가리 & 스웨덴 & 네덜란드 & 에센 연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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