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는 <엘리자벳>의 해외 진출 및 연출 변화, 판권을 소유한 극장 혹은 극단을 소개하는 내용. 아마 엘리에서 삭제 혹은 추가된 장면도 같이 적을 것 같아요. <'검은 갈매기'에서 '엘리자베트'까지 : 오스트리아 황후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기원과 제작사>에서 발췌해서 흥미있는 부분만 소개하는 중.
올린 순서대로 빈 > 일본(다카라즈카, 토호) > 헝가리 > 스웨덴 > 에센 이렇게 가지 않을까 해요. 그래도 티스토리 컨셉에 맞게 헝가리 뮤지컬 얘기는 빠지지 않을 것.
* 명칭 구분하기 귀찮으니 뮤지컬은 '엘리자벳', 인물 표기는 독어식 (엘리자베트, 조피 등)으로 적을 예정
* 관심있는 부분만 후루룩 읽어서 오역이나 뇌내오피셜 있음. 이번에도 적당히 걸러듣기.
1. 안데어 빈 극장에서의 1992년 첫공연
<엘리자벳>은 1992년 3월 2일, 빈 호프부르크의 기자회견에서 대중에게 첫 공개됨. 이 때 주요 캐스팅도 소개하고, 당시 오페라 연출로 더 유명했던 하리 쿠퍼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됨. 그리고 개별 곡 데모(엘리와 죽음 테마 곡)가 라디오, tv에 방영됨. 초연을 위한 리허설 후, 본공연은 4~6개월 후가 지나고서야 올라갔음. (처음엔 리허설, 여름에 1달간의 휴식. 마지막 완성된 무대로 4주 리허설)
그 과정에서 쿤체와 르베이가 구성한 장면은 크레에이티브 팀에 의해 변경, 삭제됨. "쿠퍼(연출)과 샤퍼노흐(무대미술)는 역사에 크게 개입했다" 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의상과 가면까지 이미 준비되었던 "당나귀 머리"장면은 원래 '사냥'에 추가될 예정이었음. 근데 쿠퍼가 ...구리다! 빼!!!! 해서 삭제. 그래서 네덜란드, 일본, 에센에선 삭제됨. 대신 헝가리에만 여전히 남음....아 대체 왜.....
이 장면은 단순히 엘리가 승마를 좋아했다! 가 아니라, 엘리의 시에 언급된 티타니아의 당나귀(= 그녀의 숭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으나 삭제했다고 아...그래서 헝여름밤(헝가리 창뮤. 엘리와 죽음이 티타니아와 오베론, 당나귀는 요제프 배우가 맡음. 이 무슨 혼란한 캐스팅!) 의 그 당나귀가 나대는 장면이 이상하게 늘었더니만...
그리고 "미래의 영혼들이여"라고, 엘리의 시에서 따온 엔딩곡도 삭제되었지만, 완전히 폐기된 건 아니었음, 2002년에 10주년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보였다고 하는데 아하 이 노래! 엔딩이 코러스라니 뱀파춤 생각나잖아요 무시무시해라!
아니 근데 이 영상 헝뮤입덕 후 다시 봤는데, 카타랑 실베가 나오네요. 뭐 둘 다 헝가리에서 초연 엘리&죽음이었으니... 근데 실베가 유일하게 헝톧 분장 안한 공연인데 여기까지 와서 부르는 게 론도네??? 너무너무 킹받아요!!!!
여튼 개인악감정 빼고.... 몇 번의 수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던 공연은 초반에 언론의 혹평을 받았음. 그럼에도 <엘리자벳>은 가장 성공적인 독일어권 뮤지컬이 되었고.
1.1 빈 초연의 제작진 - 하리 쿠퍼 연출
원래 쿠퍼는 엘리자베트 실존인물은 안좋아했음... 끔찍할 정도로 쾌활한 50년대 영화를 보고 자란 시기라서. 3부작 영화 한편 보고 오 다시는 저런 영화 안 볼거야! 다짐했다고. 거 성격 명확한 인간! 하지만 뮤엘리 프로젝트 제안받고, 하만의 엘리자베트 전기를 읽고 "이 인물은 훌륭하고 흥미롭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콜ㅇㅇ 맡게 됨.
"지금까지 (엘리자베트에 관한) 신화는 잘못되었다. <엘리자벳>은 본인이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인도의 해방에 관한 이야기다. 엘리자베트는 빈 궁정의 속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으나,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제네바에서의 무의미한 죽음은 논리적인 결말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쿠퍼는 엘리자베트 프로덕션을 알게 되자,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황후가 메인인 극을 베를린에서 초연한다고요? 도르신? 그건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우겨서 빈에서 올려지게 됨. 아 진짜 성격 분명하네!
쿠퍼는 원래 오페라 감독이었으나 <엘리자벳>이 댄스 넘버만 있는 뮤지컬이 아니라, 플롯, 의미있는 갈등, 장대한 서사가 있는 뮤지컬이라고 높이 평가했음. 아 그야 자기가 담당했으니 그랬겠죠. 그리고 본인에게도 맞는 악보였다고. 다른 록 뮤지컬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함. 거 튕기기는. 그리고 이 때 이후 세트 디자이너, 의상디너이너와 쿵짝이 잘맞아 모차르트! 초연까지 같이 작업함.
그리고..92년이랑 05년 조명이 어두워서 사람만 보일 정도였는데 쿠퍼는 이렇게 얘기함.
"나는 생각했다. 죽음의 춤을 춰야한다면 밝은 햇살 아래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곰팡이로 덮여있고, 포자가 터질 것처럼 보이는' 의상들과 함께 조명도 그에 상응하는 분위기를 반영해야 됐다"
아 조명비용 다 무대에 썼냐 불평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최근 눈이 많이 침침해지고 있다구요. 여튼 초연의 연출에선 추상적인 죽음의 춤을 보임에도 감정적인 순간이 부족하진 않음.
인물들은 부분적으로 공허한 무대(난 나만의 것)에서 연기함. 이 장면에선 엘리자베트의 고립된 입장과 달리, 바깥의 생동감있고 불안한 세계(행복한 종말, 하스)와 대조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음. 그리고 체조 연습실은 제국의 장엄한 실내장식과 달리 현실과 다른 sf무대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한 마담 볼프가 지나치게 큰 현금보관기에서 포즈 취하거나, 조피가 체스판 위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도 인상적인 경험을 연출하기 위해서였음.
반면 감정을 자극하거나 드러내는 장면에선 극이 가진 텍스트만이 힘을 가짐. 그 예가 한밤의 조각배와 키치였고. 이건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라 같이 추가하기.
1.2 빈 초연의 제작진 - 무대 디자이너 한스 샤퍼노흐
뮤지컬은 처음이던 쿠퍼(연출)이랑 하인리히(의상)에 비해, 샤퍼노흐는 1990년도에 "Freudiana"로 뮤지컬 경험이 있었음. 아 그 프로이트 배경 뮤지컬요. 너무 망뮤라서 vbw 공식홈에만 기록 남고 사진은 위에 거 빼면 아무것도 없는....
"나는 가라앉은 k.u.k(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약자), 침몰한 제국과 황실의 시대의 단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편으로만 존재하는 세계. 고고학적인 지층처럼 계층화된, 키네틱한 풍경에 섞인 세계를 초현실적이고 낡은 잔해를 통해서."
저 장대한 포부를 구현하기 위해, <엘리자벳>을 통해 지금까지의 무대 기술의 정교함을 꺼냈다는데..여기에 기술 보고서도 있네 대체 왜..? 당시엔 29개의 장면에 27개의 전환이 필요했음. 그래서 지름 17.20m의 회전무대가 있고..리프팅이 있고.. 뒤에 한쌍의 날개가 있고... 여기는 너무 전문용어라 모르겠다 패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무대는 침몰하는 배에서도 보여줬고. 인물들이 움직이는 도중 날개를 통해 요동하는 땅을 보여주며 죽어가는 시대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는 듯.
그리고 죽음을 중심으로 항상 관객들 앞에 보여주기 위해 토드대교를 설계했고. 약 3m 길이로 만들어서, 최대 4.85m높이에 배우들(토드와 루케니)가 갈 수 있는 토드대교는 약 35도 각도까지 하강할 수 있다고. 와 정말 유익하다! 미니어처 만들기 유익한 정보!
그무대 위 초대형 세트로는 루돌프의 침대이자 죽음의 마차가 있고... 저자가 인상적이라 하는 건 "하늘과 땅사이"의 장면이었는데, 왜곡된 합스부르크의 독수리 형태의 세트 뒤로 빈 프라터의 대관람차가 보여짐. 그래서 관객들에겐 실제 회전하는 관람차의 환상이 완성됨.(프라터 공원에 있는 대관람차. 사실 두 사람이 만날 땐 없었고, 엘리 사후 직전에 세워짐. 왜 이거까지 년도 따지나면 파이퍼랑 루케니 날조썰 풀면서 찾아보느라)
빈판무대에선 그 외에도 프라터를 연상시키던 장면이 몇 있었음. 행복한 종말에서 죽음의 천사들이 운전하던 범퍼카, 계획이란 소용없어의 회전목마 전부 유원지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 이 때의 배경엔 왈츠 음악이 함께 깔리면서, 이 장소의 배경은 빈이라는 걸 상기시킴.
또한 오스트리아 풍자화가 "Manfred Deix "가 그린 그림은 1막 7장, 사랑의 구경꾼들에 사용됨. 기괴하고 찡그린 얼굴이 인상적이나, 독일어권 국가에서만 인식할 수 있는 거잖아요. dvd에도 나오길래 대체 왜 나오는지 궁금했는데 이건 진짜 유익하다!
그 외엔... 조피의 체스판도 조명 세트 크다고 했고, 무대미술가의 거울에 대한 애착은 엘리에 이어 모촤에서도 이어진다고 했고. 그리고 루돌프 장면에서 죽음 등장에도...특수 거울기술(오페라의 유령에 썼던 것처럼) 을 썼다고 함, 이건 관심없음 후비.
이렇게 거대한 세트를 쓴 이유는, 관객들이 이미 티비나 영화로 인해 장엄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서. 오페라에 쓰던 기술력과 음향을 뮤지컬에도 겁나 썼다는 듯.
전체적으로 볼 때, 무대디자이너의 무대는 조명감독의 효과와 함께 쿠퍼의 화려하고 침울한 방식으로 연출된 죽음의 춤을 위한 완벽한 설정을 제공함.
"키치" 의 장면이 씨씨의 재관점-감정적 몰입을 방해하고 실제 황후는 아무것도 안했다는 역사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든다면, 빈의 세트들은 관객들에게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무대가 추상적이며 현실적으로 왜곡되어졌다는 걸 말해준다. 환상과 해석에 충분한 가능성을 남기고자 하는 엘리자베트의 인생 이야기를.
1.3 빈 초연의 제작진 - 의상디자이너 린하르트 하인리히
<엘리자벳>에 나오는 의상들은 장신구 혹은 곰팡이 흔적처럼 보이게 만드는 띠를 두름. 이건 지금 해석이 안되는데.. 귀족들의 예복에 적용되는 미역줄기 같던 그게 전나무 가지를 닮음과 동시에 곰팡이? 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또한 의상디자인, 장신구의 역사적 정확성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수세기동안의 유행했던 복식 스타일을 담음. 궁정 유일한 남자고 평하던 조피는 유니폼 드레스, 호프부르크의 하인과 요제프는 조피와 비슷하게 엄격한 스타일의 복식, 그리고 엘리자베트는 장난스러운 소녀스러움 > 고전적인 우아함 > 검은색 상복의 단순함으로 변화하는 스타일을 보여줌.
1막 마지막에서 머리에 별 장식 달고 드레스와 액자에서 나오면서, 윈터할터 그림의 재현을 통해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가 있음. 다만 빈 이외엔 이 장면에서 박수가 없음. 오직 빈 청중만이 역사가 현재를 따라잡은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
그래서 하인리히는 30명의 배우를 위해 400벌 이상의 의상을 디자인했고, 엘리는 13개의 다른 예복을 입었고, 프란츠 요제프는 4개, 죽음은 3개, 루케니는 2벌....아이고 단벌신사는 아니라 다행이네!! 그 외 다른 재킷이나 모자도 커버치고....
1.4 빈 초연의 제작진 - 엘리자베트 안무
초반의 프롤로그에서 죽은 자들은 모두 부자연스럽고 음악에 어긋나는 좀비춤을 춤. 왜냐하면 쿠퍼가 원했기 때문에!
엘리는 뮤지컬 무대지만, 전체 무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임 = 안무로 구성되었기에 흥미로웠고. 이는 쿠퍼의 의도였음. 무대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춤을 보고 싶진 않았지만, 대신 각 장면과 스토리에 맞게 많은 움직임을 보고 싶었다고.
일부 비평가들은 엘리자베트가 "몸을 끊임없이 허우적거린다" 라며 혹평했으나, 이는 특별한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음. 안무가는 주인공이 춤을 추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만 무대에서 댄스 장면을 보여줌 : 그게 바로 결혼식의 왈츠 장면이었고. 그 외의 앙상블들은 엄청난 몸의 움직임과 리듬으로 몸을 쓰고.
엘리와 죽음이 파드되, 피루엣과 같은 낭만적인 듀엣댄스를 추는 건 이야기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음.
그래서 관객이 춤에 집중하는 건 "우유"와 같은 네거티브한 장면임. 루케니에 의해 선동된 사람들은 불만을 표출하며, 파워풀한 스텝, 마지막까지 공격적인 동작을 보임. 작업복을 입고 우유통을 든 여성과 남성들은 관객들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며,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우유통을 위협적으로 바닥에 부딪힘. 결말은 마지막 우유 한 방울을 놓고 필사적으로 쟁탈전을 벌이다가 절정에 이르고. 루케니는 토드대교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줌. 사람들 사이에 증오를 불러일으키려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반면 황실에서의 장면은 엄격함과 규율이 지배되는 공간임. 그래서 시종들은 갑작스럽게 멈추는 동작, 엄격한 걸음걸이, 회전하며 움직여서 엘리자베트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대조를 보임
2. 초연 공연 이후 엘리자벳 언론 평가
여기서부터 좀 너무한 내용들도 있는데... 초연 후 빈 언론에선 혹평이 자자했었음. 작가, 감독, 배우에 이르기까지 전체 예술팀의 처형과 같았다고. 몇십년이 지낫음에도 1992년 9월 5일의 혹평 기사 헤드라인은 관련자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함.
"씨씨가 침몰하고 있다!"
"이 무슨 카이저린-슈마렌인가!"
"교수대에 매달린 극"
슈마렌(팬케이크.카이저-슈마렌이라고도 불리는데, 황제께 드릴 수 없는 엉터리, 헛소리 통속극이란 의미도 있음)에 이런 뜻이 있었구나 오 파이퍼 썰 풀 때 써먹어야지 메모메모... 아니 여튼 그게 아니라.. 인신공격급의 비판까지 있어서 적당히 읽고. 아마 극 자체를 비평한 것보다 제작자를 겨냥한 게 뒤에서 뭐 알력다툼이 있었나봄. 비판이 아니라 거의 멸망이었다고. 반면 엘리가 확실히 흥행 성공하자 이후 제작한 모촤는 좋은 평가를 받아다고 함... 떼잉!
다음 발췌는 극단적평론(긍정,부정 모두)만 가져온 것임.
"르베이는 족장들의 투쟁을 위해 모든 음악적 정수를 양조주에 넣는 드루이드 파노라믹스(아스테릭스의 약제사)처럼 모든 걸 섞는다. 카를 오르프, 존 트라볼타 등의 히트곡을 머릿속에 적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마치 혀 끝은 머리를 향해 말하고 싶지만 기억들은 그 재구성에 도움이 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과도 같다"
노래 진부하다고 까는 중인데 아 진짜 너무한다. 근데 나라도 파노라믹스 소리 들으면 진짜 몇십년 지나도 잊을 수 없겠네!
"극을 활기차게 만드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무대를 이보다 더 화려하고, 다채롭고, 환상적으로 작업할 순 없을 것이다."
"미래는 "Sissical"의 위대한 승리가 될 것이다"
정말...극과 극.... 와중에 한 평론은 이단 프리먼보고 무대를 제대로 뿌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젤 높게 평가했고, 다음에 우베를 요즘 뮤지컬 배우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반면 합스부르크 왕가 쪽 사람들은 쏘쏘 했다는 듯. 여튼 이 외에도 배우들이나 무대를 향한 극단적 평론이 달렸고.
3. 각 나라별 <엘리자벳> 프로덕션
초연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벳>은 독어권에서 제일 성공한 뮤지컬이라 볼 수 있음. 당시 5개 언어, 6개 국가, 13개 도시, 14개 극장에 공연되었고 (2002. 12 기준. 지금은 더 늘었으나 찾아보기 귀찮다!) 성공한 이유 중 하나로 꼽는 건 각 나라의 프로덕션 팀이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캐스팅, 연출, 제작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임. 게다가 쿤체, 르베이 팀 권한으로 초연이후 5편의 새 장면 (론-도, 음모, 꿈과 현실 사이(일본판에만 있음), 탄젠빌, 벨라리아)가 추가. 수정, 삭제(하스, 사냥)됨.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관객의 취향이나, 오스트리아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색도 허용하고 있음. 그러다보니 vbw의 라이센스 권리 허용에 대한 관행도 달라지고, 엘리자벳 프로덕션 역시 각 나라마다 차별점을 가짐.
아마 독뮤 중 나라마다 프로덕션 연출이 제일 다른 게 엘리자벳 > 모차르트 > 레베카 순 아닐까 추측 중. 사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마이웨이로 올려대는 헝가리판만 덕질하고 있어서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임. 그나마 최근에 나온 마리 앙투와네트는..부다페가 또... 오들레앙 아들내미도 등장시키고 뭐가 많이 다른 거 같은데 17년 이후 안 올라와서...
3.1 엘리 이전과 이후의 뮤지컬 프로덕션 권한 관행 변화
80년대까지 브웨쪽은 라이센스가 엄격하나 자체해석은 저작권에 의해 금지였음. 유일한 예외는 동유럽쪽이었고. 폴란드, 헝가리, 체코에서 브웨쪽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건 불가능해서...아 맞아 공산주의 국가였지! 여튼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90년대 이후로 뮤지컬 제작자들의 사고방식이 바뀜.
당시 쿤체와 르베이는 음악, 텍스트, 극본에 대한 출판권을 보유하고 있었음. 92년 엘리의 흥행 이후 스웨덴, 일본, 헝가리 극장들은 발빠르게 자기네 나라에도 엘리자벳을 올리고 싶다고 컨택함. 그러나 빈 판의 무대미술과 연출을 그대로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음.
일본의 경우, 전원 여성 배우들로 이뤄진 다카라즈카 극단이 원하는 건 주인공이 엘리가 아닌, 죽음으로 올리는 거였고 (다카라즈카 특성 상 남역 톱 배우를 돋보이기 위해 주연이 남성이 되어야 했음). 스웨덴의 칼스타트의 소극장에선 빈판의 대규모 프로덕션을 1:1로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 없었음. 그리고 헝가리에선 세게드의 야외공연장에 처음으로 엘리를 야외공연으로 보여주고 싶어했음. (아마 이건 부다페 극장도 대극장치고 작은 편이었기 때문일 듯. 100년전 공연장이라 해오름 사이즈에 단차가 극악이라. 박스석 아니면 앉을 때마다 제발 앞자리에 키 큰 헝가리인 앉지말아주세요 기도해야 됨.)
그래서 쿤체와 르베이는 외국 팀들의 현지 극장, 혹은 기획사의 전통과 상황에 맞춰 진행하게끔 허가함. 이러한 방식을 통해 뮤지컬 제작자들은 과거처럼 대극장 뮤지컬들이 롱런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걸 깨닫고, 다양한 지방 도시 및 나라에서 보여줄 수 있게 레플리카 방식에서 논레플리카로 전환하기에 이름.
그래서 <엘리자벳> 뮤지컬 해외 수출의 경우, 일본 엘리 성공 이후 풀 패키지가 아닌 대본 ,음악, 상영권만 포함한 소규모 라이센스 수출방식이 늘어남. 보통은 현지 팀에서 자체버전을 새로 만들거나, 대본도 원저자 승인받아 수정해야 됐지만 다카라즈카 버전에선 르베이&쿤체가 당시 연출이던 코이케 감독의 요청에 의해 일부 장면을 수정했음.
그 외엔 캐스팅도, 현지 언어 번역도 엄격히 모니터링 하지 않아서 코이케가 뚝딱딱 고치고 헝가리에서 우당탕 찐락스타 데려와서 다 고쳐도 허허 다 좋다 넘어가는 편이라고. 관대함엔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러한 vbw의 뮤지컬 수출은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뒤로, 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로 퍼졌는데. 이거랑 관련해선 20년넘게 히스토리가 쌓이다보니 재밌는 논문들도 더 많음. 빈과 일본의 뮤지컬 글로컬라이제이션 이라던가. 다카라즈카 각색의 변경 방식이라던가. 이건 다음 포스트에서 같이 언급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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