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트에 이어서. 이번엔 역사적 실존 인물을 어떻게 극 중 캐릭터로 만들었나, 기본적인 인물 성격 기록 정리 페이지.
<'검은 갈매기'에서 '엘리자베트'까지 : 오스트리아 황후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기원과 제작사>에서 발췌해서 흥미있는 부분만 적어두는 중.
* 명칭 구분하기 귀찮으니 뮤지컬은 '엘리자벳', 인물 표기는 독어식 (엘리자베트, 조피 등)으로 적을 예정
* 관심있는 부분만 후루룩 읽어서 오역이나 뇌내오피셜을 적을 수 있음. 이번에도 적당히 걸러듣기.
1. 장면으로 보는 빈의 종말 - Éljen & Hass 와 침몰하는 배
루케니:
헝가리 인들이여, 엘리자베트가 너희를 해방시켰다
만국의 카드집에서 그녀가 뽑은 카드는 너희들이었어.
새로운 시대를 지배하는 건 민족주의.
그것이 황제의 제국을 무너트릴 것이다!
무정부주의와 온갖 민족들의 혼돈
오스트리아가 무너진다
헝가리의 도약, 합스부르크의 종말…낡은 세계의 종말!
뮤지컬 속 장면과 실제 빈 역사의 종말이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부분부터 얘기하자면, 쿤체는 대재앙의 시작을 위한 중요한 순간으로 2막 첫번째 장면인 '키치'로 뽑았음. 루케니가 '키치'에서 이 말을 얘기할 때, 저자는 사실 '합스부르크의 끝'과는 다르지 않나, 왜 이런 말을 했나 생각했는데 아래 지시문을 읽고나서야 이해했다고.
군중들이 물러선다. 죽음의 춤 무리들이 엘리자베트와 프란츠 요제프를 죽음의 마차 쪽으로 에스코트한다. 마치 군중들이 황제 부부를 해꼬지한다는 듯 죽음의 천사들은 마차에 오르는 황제 부부를 군중들로부터 보호한다.
관객들은 무대의 대관식과 헝가리인들의 환호를 보면서 루케니의 암시를 초반엔 인지하지 못함. 그러나 곧이어 죽음이 마차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단 걸 보면서 엘리자베트의 가장 위대한 승리에서도 죽음이 임박했었고, 엘리가 제국 멸망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무의식적인 인지를 하게 됨.
빈의 관객들에겐 Éijen 에서의 환호, 특히나 박스석에서 하얀 손수건을 흔들기도 했는데 이는 곧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침몰을 축하하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었다고.
죽음:
그렇게 너는
내 뜻에 따라
세상의 흐름을 바꾼다.
우리는 이토록 가깝게
이어져있다.
이후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초연 이후 네덜란드, 에센에서 추가되면서 엘리자베트의 승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수립이 곧 제국의 종말로 흘러간다는 가사가 나옴.
아 이건 딴소리인데 Éljen 적을 때 뭐라 써야 하는지 모르겠음. 헝뮤덕의 영혼은 당연히 이옌이지!!!! 외치는디 라센에선 엘젠이라 하니까. 귀찮으니 무정보주의자 루케니도 바꾼 김에 다음 엘리 땐 이옌이라 했음 좋겠따.
여튼 딴 소리가 길어졌는데... 정치적인 장면을 가져온 유일한 부분은 하스(HASS 증오. 라센에선 삭제됨). 이 장면만큼 많은 토론, 논란을 가져온 건 없었음.
1888 년의 3월 어느날. 전독일당 당수 게오르크 리터 폰 쇠너러의 추종자들이 빈의 오펀링을 가로막았다. 교통이 막힌다. 루케니는 공사장 울타리 위에 앉아 시위자들이 다가오는 방향을 바라본다.
(..)
마지막으로 보이는 장면은 20세기 파시스트들의 행진이다.
'그로테스크하고 혐오 가득한 표정의 쇠너러의 추종자들이 독일 국가, 휘장을 달고 전선에서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북의 리듬에 맞춰 행진하는 장면은 파시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빈 일부 공연에서는 현장에서 박수치는 사람들(내용 때문이 아닌, 시각적인 구현을 향한 감탄)이 있었고, 박수치는 관객과 고함과 비난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기 함.
Peter Back-Vega...뉘셔... 아 빈 뮤지컬 극작가이자 연출가..는 이렇게 말함. "흥미로운 뮤지컬(특히 <엘리자벳>)에서도 역사적, 정치적 사실에 대해 마음과 생각을 닫아서는 안된다"라며 하스의 장면을 인용함. 브레히트가 좋아하겠어. 여튼 이 장면은 실제 정치상황과도 엮여진 것으로, 엘리와 루돌프, 제국 전체는 반유대주의의 물결에 휩쓸렸음.
사실 실존인물인 엘리자베트는 본인 나라의 정치문제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함. 황후로서 거의 할 수 있었던 권리가 없었기 때문. 남편에게 조언해서 헝가리 문제에 대해 화해하자고 한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엘리가 남긴 편지와 시들 대다수는 황후가 대중에 드러나지 않고 비밀 속에 존재하는 것을 보여줌.
군주제에 속한 인물임에도 엘리는 아들 루돌프와 비슷하게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음. 그러나 그걸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안음. 그래서 인물의 정치적인 측면은 뮤지컬 전면에 드러나지 않음. 인물의 정치적 사고를 보여준 건 더라키고...빈과 헝가리에서 망했지.......
무대가 점차 기운다. 관객들에게 갑판을 보인 배가 가라앉는다. 진짜 프란츠 요제프가 쓰러지다시피 무대 위로 뛰어든다. 당황한 그는 사람들 무리 사이를 뛰어다니다 누가 이 상황을 이끌고 있는지 눈치챈다. 그는 죽음을 찾아낸다. (..) 폭발과 함께 장면들이 뒤흔들린다. 배의 해치에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에 아랑곳않고 사람들의 무리는 계속 움직인다. 끼익 소리를 내며 망가진 잔해들이 무대 위로 쏟아진다. 배는 완전히 가라앉으려 하고 있다.
2막 후반부(침몰하는 세계의 갑판 위), 쿤체는 본인의 세계관에서 엘리자베트=세계와 제국의 몰락이며 합스부르크 가의 가족들이 엘리보다 먼저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당했음을 보여줌. 이전까지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믿었던 관객들은 이제 환상이 완전히 깨졌음을 알게 됨. 요제프의 악몽에서 그는 쇠퇴한 군주제의 무기력한 조타수이며, 죽음은 루케니에게 파일을 건네주며 권력을 잡았음. 황제는 암살로부터 아내를 구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제국을 몰락으로부터 구하지도 못함. 루케니가 파일을 잡아가자 악몽 속 죽은 자들은 이렇게 외침.
합창 :
모두들 춤을 추었지, 죽음과 함께…
…아무도 엘리자베트처럼 추진 않았어!
그러나 친척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엘리가 죽음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예시일 뿐, 그 스스로가 주변인들의 죽음을 막을 순 없었음.
그러나 직계가족의 광기가 다른 가족들을 사로잡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순 없음. 하만은 여기서 엘리의 광증이 유전된 방식에 대해 2가지 가설을 세워봄.
첫번째) 루드윅(=노히슈반스타인성 지은 루드비히2세)과 그의 형제 오토의 정신질환은 호엔촐레른가에서 비롯된 것
두번째) 실제 비텔스바흐 직계 친척에게 정신질환이 퍼짐 (엘리의 할아버지가 정신장애 있었고, 엘리의 형제자매도 일부 정신장애가 있거나 우울증이 있었음)
- 극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연출하는 방식
1 엘리자베트 황후 - 사슬에 묶인 영혼
<엘리자벳> 뮤지컬은 엘리자베트의 삶 중에서 45년간 황후로 살았던 생애(1853~1898)만을 발췌, 빈 궁정에서 살았던 인생의 기복에 대한 통찰을 보여줌.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고통스럽고 어리고 순진하기만 한 소녀가 아님. 엘리자베트는 완벽히 무고한 인물도 아니고, 고집 있는 여성으로 보여짐.
그러나 엘리의 역할은 본인 스스로에 의해 정의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됨. 극 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엘리를 생각했는지 보여줌. 조피, 막스, 요제프, 루돌프, 빈 궁정사회와 시민들, 루케니(20세기 관점에서 논평하는 유일한 인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를 사랑하는 죽음의 관점을 통해서.
관객들은 20세기 후반의 계몽된 관점으로 19세기에 일어났던 사건을 봄. 20세기 이후의 관객들은 엘리가 처한 상황을 19세기의 동시대인들의 부정적인 평가나 몰이해와는 다른 시선으로 공감하면서 봄. 특히 현대에도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엘리가 직면한 문제(결혼 후 집안과의 투쟁과 자유)와 이어지기 때문에.
쿤체와 르베이는 로미 슈나이더가 나오는 영화에 의해 형성된 귀여운 씨씨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음. 그러나 고통받는 영혼을 향한 연민으로만 끝내지 않음. 엘리는 그렇게 결백한 사람은 아님.
루케니 :
하나 슬쩍 알려드립지요.
여러분의 씨씨는 사실은 역겨운 이기주의자였답니다.
시어머니에게 힘 과시 하려고
아들을 놓고 싸웠다지요.
그리고는 아들을 팽개쳐뒀어요.
그녀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해방이었지요.
엘리는 시어머니와 궁정생활에 맞서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으나, 결국 그 스스로가 주변 환경에 끊임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느끼며 상황을 방치함.
주도권에 대한 조그마한 승리 이후 아이들과 남편에게 관심을 버린 것처럼.
키치에서의 루케니의 말처럼, 청중들이 한 두 번 감상에 빠지려고 할 때 극은 엘리자베트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만듦.
관객이 엘리와 처음 마주하는 건 1853년 6월의 15살의 모습임. 바이에른의 공주, 의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소녀, 도전적이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귀족생활을 싫어하며, 1막에서는 이런 씨씨 이미지가 오랫동안 유지됨.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에서 최후통첩 작성하고 요제프를 구석에 모는 순간까지.
그 장면 직후 엘리자베트의 인상이 바뀜.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목표를 위해 남편 뿐 아니라 헝가리 사람들에도 깊은 인상을 남김. (쿤체는 사실 실존인물 엘리자베트가 자신이 사랑했던 나라와 국민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더 했다는 걸 극 중에서 더 언급하지 않음)
그리고 '전염병' 이후 엘리의 인물상이 다시 바뀜. 아름다움을 향한 숭배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고, 요제프가 자신을 속인 것임을 알았을 때. 이제 관객은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삶에 환멸이 난 황후를 볼 수 있음.
(황후의 아이들은 극 중에서 루돌프만 등장하며 둘째인 기젤라는 루케니에 의해서만 언급되며 막내딸이자 엘리가 가장 아꼈던 막내딸 마리 발레리에 대해선 완전히 언급하지 않음)
엘리자베트 :
이미 난 충분히 고통받지 않았어? 자비를 베풀어줘!
오너라, 달콤한 죽음…저주받은 죽음아…
나를 구원해다오!
그 후 영매술에 빠지다가, 엘리자베트의 깊은 추락은 루돌프의 요청을 거절한 것부터 시작됨. 엘리는 죽음에게 자비를 구걸하나 버림받음. 관에서 고통받는 어머니의 모습은 관객의 동정을 기대할 수 있는 모습임.
요제프와의 듀엣에서 청중의 감정은 절정에 이르렀고, 이제 절망적인 상황의 분위기는 루케니에 의해서만 반전될 수 있음(ex. '내 새로운 상품')
그러기에 극의 끝은 결코 슬픈 순간(ex.<에비타>에서의 느린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품에 안긴 구원의 장면임.
엘리자베트 :
너는 몸 만이 옭죄었을 뿐이지만
나는 영혼이 묶여있다.
저자가 평하길, 엘리잡제트는 19세기에 동시대들의 인물보다 일찍 깨어있었음에도, 본인은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잘못된 해방의 예라고 말함. 육체는 해방되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갇힌 상태라고.
음악적으로 엘리의 테마곡은 "난 나만의 것" 모티브에 의해 이끌어지는데, "베일은 떨어지고"의 에필로그에서 죽음의 모티브와 결합됨.
엘리자베트 :
하지만 내 삶을 요구하진 말아요.
그것을 당신에게 줄 수는 없어요.
나는 나만의 것이니까요.
또한 1막 후반부 '난 나만의 것'에서 모든 엘리자벳 프로덕션은 극 중 하이라이트가 됨. 젊은 황후는 바닥까지 내려오는 얇은 잠옷만 걸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고통을 외침. 자신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며, 여전히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음. 캣츠의 리멤버, 에비타의 돈크라이미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주제곡.
뮤에선 엘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줌. 탄젠빌이 있는 에센판 제작 전까지 둘 사이에 듀엣은 없었음.(마지막 베일은 떨어지고 제외). 그래서 죽음과의 모든 만남은 엄청난 긴장감을 가져옴......야이그래놓고 론도를 가져오냐~~!!!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서 엘리는 죽음을 만남. 최고의승리 뿐 아니라 최악의 패배에서도. 엘리가 그토록 죽음에 저항했고, 루돒의 자살 이후에서야 죽음의 구원을 간청했다는 사실은 전기에 숨겨진 내용이었음. 하만은 여기서 엘리의 최애캐로 예시를 듦.
엘리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은 아킬레우스임. 코르푸에 있는 별장도 그의 이름을 땄고, 헤르메스 빌라에 동상도 있음. '그의 사랑이 언제 끝나고, 죽음에 대한 갈망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 엘리자베트는 본인을 이해하는 다른 사람을 찾지 못했다. 남자와의 진정한 '정상적인'관계를 맺기엔 너무 예민했다. 그래서 본인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죽은 영웅들과 환상적인 관계로 도망쳤다.'
쿤체는 이 영웅 중 하나를 죽음으로 만들었음. 그러나 죽음을 향한 갈망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음. 엘리를 죽음의 위기에 빠뜨린 건 마이얼링에서 루돌프의 죽음이었음.
아들의 자살 이후 엘리는 가톨릭 신앙에서 눈에 띄게 거리를 두었고, 딸 발레리에게 '루돌프가 내 신앙을 죽였다'라고 말함.
이제야 죽음이 자유롭게 활개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는 엘리를 거부함. 엘리가 제네바 호수에서 루케니를 만난 건 9년이 지나서였음.
2. 루이지 루케니 - 20세기의 남자
루케니는 <에비타>의 나레이터, '체'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볼 수 있음. 쿠바 혁명가인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영부인인 에바 페론을 만난 적 없듯이, 쿤체는 일생에 단 한 번 황후를 만난 루케니를 나레이터로 삼고 엘리가 죽던 날까지를 소개함.
에비타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벳도 장면들을 플래시백으로 전달하나, 쿤체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줌. 그는 가상의 재판에서 증언하는 20세기 인물임 (1898년 체포 된 뒤 12년 후 감옥에서 자살했으니)
루케니 :
어째서, 어째서라고…밤이면 밤마다 똑같은 질문, 100년 째요! 질문 따위가 무슨 소용이요? Merda, 난 벌써 죽었단 말이다! (..) 배후? 내가 그녀를 살해한 건…그녀가 원했기 때문이오.
암살자의 진정한 동기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음. 그는 죽음의 도구이며, 마지막 침몰하는 배에서 파일을 던질 때까지를 기다림. 그러나 동시에 광대 역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듦.
호프부르크 집무실을 빈정거리며 소개하거나, 약혼 앞둔 엘리네 친척모임 조롱하거나. 엘리자베트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낼 때. 관객들은 그와 동맹을 맺으며 경외시되는 합스부르크의 세계에 저항하는 사람에 대해 기뻐함.
루케니는 분위기가 가장 가라앉은 순간 (어린 조피의 죽음, 루돌프의 죽음)에 해방감을 주며 관객들의 관심을 다시 끌어냄 (몰입방해의 역할도 같이 한다는 듯) 또한 극 중 가장 좋은 곡 중 하나인 '키치'를 가짐. 비록 유일한 솔로곡이지만.....너무해!
여튼 17개의 장면에서 등장하고(빈 초연 기준), 2막의 시작은 그의 손에 달림. 엘리자베트의 대관식 기념품을 관객들에게 나눠주면서 등장하기 때문.
마지막에 황후를 찌르지만, 그는 황후의 구원을 도우며 엘리와 죽음 두 연인 사이의 해피엔딩을 보장하는 인물이라 관객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음.
사실 빈, 헝가리, 스웨덴에선 남자 주연으론 죽음 다음으로 2번째 순이나, 일본에선 4번째임(톧-요젶-루돒-루케니). 또한 네덜란드와 독일에선 3위가 되면서 프란츠 요제프과 함께 조연으로 강등당함.... 진짜 너무해 이런말듣지마 넌최고의나레이터야
3. 죽음 - 팝스타로서의 리퍼
죽음은 젊고 매력적이며 에로틱하다. 그는 양성적인 팝스타 같고 젊은 시절의 하인리히 하이네와 닮았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지시문과 함께 언급함. '죽음은 첫 공연 이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역에는 스타를 만드는 모든 것이 갖춰졌다."
당시 죽음의 긴 금발은 트레이드 마크였음. 짙은 메이크업으로 양성적인 모습을 강조. 최초의 죽음 배우인 우베 크뢰거가 톧의 시각적 구현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쿠퍼의 언급에 따르자면, 그를 위해 맞춤제작된 역 같았다고) 2001년 에센으로 돌아왔을 때도 모든 배우들은 다 금발이었음.
그러나 동일한 예술팀이 네덜란드로 갈 땐 피부, 머리색이 어두운 톤으로 활동..... 아 그래서 헝톧은 빈이랑 다르게 한다고 흑장발에 반짝이 화장을 투머치하게 넣었구나...진짜 왜.........
그리고 엘리자베트 살인의 도구(Feile)로 추정되는 무대 오른 쪽의 돌출된 토드대교 = 침몰하는 배의 돛대이자 파일, 죽음이 처음으로 등장한 장소임.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 곳은 루케니와 죽음의 집이 되어 행동을 지시함.
그리고... 헝가리판엔 토드대교 대신 죽음의 탑이 뿌슝빠슝 등장하고.. 왜 나왔나 했더니 아하....
빈에 존재하는 죽음은 "조 블랙의 사랑"처럼 남에 몸에 들어가게 된 순진한 저승사자 청년도, 호프만슈탈의 극 "예더만"의 죽음도 아님.
그는 매혹적이며, 의지가 강하며, 황금 새장에 갇힌 엘리자베트에게 삶의 탈출구를 제공함. 항상 6명의 천사(죽음의 춤 그룹)이 있는데, 한팔에 날개가 달려서, 검은 까마귀처럼 희생자 주변을 돌고면서 주인을 위해 길을 열어줌.
19세기에 병적으로 자살 성향이 강한 도시 빈에서 죽음이 실제 인물로 무대에 서는 건 우연한 일치였음. (쿤체는 원래 오스트리아 수도를 세계 초연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독일 힐브론으로 생각했음). 그치만 무대 위에서 죽음이 인물로 등장하는 건 전세계적으로도 인기있는 주제고.
일본(다카라즈카)와 헝가리 관객들은 항상 죽음의 영역에 직면하나, 타 프로덕션의 관객들은 단 한번만 죽음의 영역으로 끌려감. 아 헝판에선 헝톧네 탑.. 다카라즈카는 뭘까 궁금하네...... 프롤로그 외의 다른 모든 등장 장면에서 죽음은 잠시 산 자의 세계로 들어가 엘리, 루돌프, 루케니에게 자신을 드러냄.
엘리자베트 (초연):
엄마, 내가 나이가 차더라도 남편감을 찾진 말아요.
날 행복하게 해줄 것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엘리자베트 (에센):
어디로 가세요, 검은 왕자님, 왜 여기 머물러 주지 않으세요?
당신 품 안은 참 편안했어요.
그리고 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픈 갈망을 느꼈지요,
검은 새처럼, 당당하고 홀로.
네, 알아요, 당신은 죽음이고 다들 당신을 두려워하지요.
톧은 첫 만남에서 그의 동기가 엘리를 향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며, 15살의 만남에선 데려갈 마음이 없었음.
그리고 초연에선 엘리는 죽음을 향해 말하지 않고, 엄마에게 본인의 행복, 삶에 대한 사랑을 말함. 대신 네덜란드와 에센에선 검은 왕자님 대사가 추가 되면서 좀 다름.
그리고.. 일본판과 헝가리판은 론도가 추가되는데.. 저자는 이 노래는 톧을 믿을 수 없도록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만들었다고 함. 이후 내용은 다카판 언급할 때 상세설명하는 듯.
그 결과 죽음과 엘리의 관계에서 '베일은 떨어졌다'가 유일한 두 인물의 사랑 모티브의 곡이었으나.. 론도로 바뀌게 됨. 이 노래가 죽음의 첫번째 솔로 곡이 되어버리면서, 결혼식에서 마지막 춤 장면이 약화됨.
저자가 생각하기에 당시 일본(=다카라즈카)에서 이 곡이 추가된 건 극에서 죽음이 주인공이니 의미가 있으나.. 다른 프로덕션에선 론도 포기한 결정이 옳았다고...
아이고오 헝판에도 추가되었다고요
오, 부다페를 놀리지 마렴 그들은 그저 잘못된 선택을 한거야! 하기엔 10년후에 전세계가 론도에 잠식되었구나.
죽음 :
마지막 춤은 나만의 것.
마지막 춤을 오로지 나만이 너와 추련다
(..)
그리고 이렇게 나는 어둠 속에서 기다리며
네 쪽을 바라본다. 깨끗한 패배자로서.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승리하게 될 것을.
검은 왕자님 장면 이후로도 엘리는 죽음을 향한 생각을 멈추지 않음.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죽음은 결혼식의 종을 울리고, 피로연에도 참석하나, 요제프와의 1차전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마지막 춤은 그의 것이라고 말함. 그리고 거절당한 연인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임. 상대의 추락을 기다리거나, 고의적으로 삶의 의지를 깨트리기 위해 고통을 가하는 것.
죽음의 마차가 들어온다. 마차에서 내린 죽음은 엘리자베트에게 다가간다. 그의 손짓에 죽음의 천사들이 마차문을 연다. 마차 안에는 어린이용 관이 열려 있고 그 안에 두 살 난 조피의 시신이 보인다.
데브레첸에서 엘리는 어린 조피를 데려감. 빈 버전에선 죽은 아이의 관을 선물하며 그의 마차에 따라오도록 초대함. 하지만 엘리에겐 아직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있기에, 요제프 품으로 도망칠 수 있었음. 그리고 탄젠빌 장면은 이후 에센 연출 소개할 때 더 설명할 듯.
2막의 핵심적인 장면은 Éljen 이후 엘리의 승리 직후 발생함. 죽음은 어린 루돌프에게 친구라며 자신을 소개하고, 방치된 아이이자 미래의 오스트리아 황제가 엘리의 운명에 영향 끼칠 것을 알고 있음.
죽음은 루돌프를 개혁지지자들의 품에 몰아넣으면서 아버지에 대항하게 만듦. 또한 엘리의 병을 이용해서 불성실한 황제가 황후에게 특정 병을 감염시켰다고 주장하며 엘리를 몰아넣음. 그러나 엘리는 스스로를 해치는 대신 도덕적 자유를 얻고 의무와 남편에게서 영원히 도망침.
1889년이 돼서야 죽음은 마침내 루돌프에게 정치적 상황이 절망적이란 걸 밝힌 뒤 자살로 몰아넣음. 그제서야 엘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삶을 마주할 용기를 잃게 됨. 그러나 죽음은 엘리를 거절함. 왜냐하면 죽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향한 죄책감 때문이기에. 실망한 연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 다카라즈카 하나구미 공연의 프로그램 북에서 이 장면을 명확히 설명함. "죽음이 원하는 건 그녀의 삶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이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두 사람이 마침내 포옹한 순간, 죽음을 대신한 루케니의 행동은 결혼식에서 그가 예언했던 운명을 그대로 이행함.
2002년 에센 연출의 죽음을 맡았던 우베 크뢰거의 인터뷰에서, 그는 에센 공연에서 재해석한 죽음의 역할이 얼마나 배우를 강력하게 사로잡는지 보여줌. "어떤 끔찍한 테러(2001년 911 테러) 후 첫 등장에 난 "나의 임무란 파괴하는 것' 냉혹하게 연기했어야 됐다. 힘든 시기에 연극이라는 예술 형식은 중요했지만, 난 이공연에서 연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 여기서 미사공 슈튜트공 땜에 빈 떠나고 머리자름? 막공 무대위에서 죽을거라고 10대 팬에게 협박편지도 받았고. 심각한 상황이었구나.
4. 프란츠 요제프 - 감정적으로 나약한 자
요제프 :
내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차라리 자비롭고 선량하고 싶건만.
요젶은 극 중 가장 우유부단한 존재로 그는 시각적으로, 성격적으로 나약한 존재로 묘사됨. 감정적인 결정과 국가를 위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모두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상임. 어머니와 조언자들은 젊은 황제를 억압하며 그의 의견과 반대로 결정하게 만듦.
바트이슐에서 그는 어머니의 꼭두각시처럼 어색해 함.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해 존경과 복종하는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에게 반했다. 그 사람이 바로 엘리자베트.
초연 요젶인 빅토르 게르노는 이렇게 말함. "역할은 루저지만 부정적으로 해석해선 안된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그는 매우 중요하다. 엘리자베트와 왜 그렇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란츠 요제프는 자신이 "신의 뜻대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스스로의 인장을 뽑아 망쳐버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엘리자베트와 죽음 옆에 있다면, 조연이 맞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랄하다! 재밌다!
또한 요제프는 시각적으로 큰 임팩트가 없음. 배우들의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 스타일은 크게 눈에 띄지도 않고 단정하며,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콧수염이 있기 때문에. 아 콧수염 진짜 뽑아버려..여튼 황제는 거의 미소 짓지 않으며, 약간의 열광+다정함은 '천국과 지상' 장면 사이에서만 나타난다.
'한 밤의 조각배'에서 그는 사랑을 말하는 슬픈 인물이나, 동시에 그는 엄격한 황실의 교육에 의해 모든 감정을 드러낼 순 없없음.
5. 조피 - 차가운 시어머니.
황제의 어머니에겐 세상의 모든 사악한 시어머니, 새엄마, 마녀가 담겨있음. 요제프의 통치, 엘리의 첫 아이 데려가기, 새 연인을 데려오는 것까지.
조피는 탁월한 갈등의 근원임. 조피의 캐릭터는 관객의 확실한 경멸을 가져옴. 극 중에선 엘리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
나이든 귀족:
자기 시어머니가 싫어하는 건 뭐든 좋아한대.
왕년의 혁명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겠군.
데브레첸에서 헝가리의 귀족들은 엘리와 조피의 갈등을 분명히 보여줌. 또한 빈의 궁정에서 조피는 요젶과 엘리 사이의 논쟁거리였음. 그러나 다른 프로덕션에선 조피의 동기를 더 명확히 보여주고, 비인간적인 면모를 약간 고치고, 그의 죽음에 대해 동정을 줌.
아 이거 헝가리판 연출 얘기하는 듯. 헝판에서 처음으로 죽음이 조피 데려가는 걸 보여주고, 루돒 죽고나서 엘리의 죄책감의 형태로도 재등장해서.
6. 루돌프 - 저지된 혁명가
네덜란드, 독일을 제외하고 루돌프는 2막에서만 등장함. 뭐지, 1막 카페 장면 얘기하나..? 여튼 9살 왕세자와 성인 배우가 한 인물을 맡으며, 관객은 2막의 루돌프가 외롭고 불안하고 가혹한 양육과정에 괴로워하는 소년이었음을 앎.
2막에서 왕비가 된 황후가 승리를 음미하는 동안, 죽음은 아들을 통해 엘리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아이에게 다가감. 성인 된 후에도 황태자는 여전히 갈기갈기 찢긴 성정을 지녔음.
극 중 죽음을 보는 건 엘리와 루돌프 뿐임. 루돒은 어머니의 거울인 걸 곡으로 표현하며, 요젶이 엘리를 버렸던 것처럼 엘리는 아들을 버림. 그러나 엘리가 평생을 하지 않았던 단계, 자살로 가면서 죽음의 도움을 받음.
초연 이후 다른 프로덕션에선 직접적인 황제와의 갈등, 음모장면이 추가됨. 그 외의 설명은 딱히 없어서... 이건 다음에 라이문트 극장에서 올린 어페어 마이얼링 얘기하면서 소개할 듯.
휴 인물소개란까지 다 읽었다. 다음 챕터는 빈 초연 극장 제작자들 얘기부터, 전세계에서 올린 엘리자벳의 국가별 특징 이라서 따로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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