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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뮤지컬

뮤지컬 엘리자벳 줄거리로 덕질하는 루케니 (2)

by 헝뮤아카이브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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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엘리자벳 최애는 루케니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헝가리판 엘리자벳 기반으로 배우 및 실존인물 및 덕질 헛소리가 좀 길어질 예정이라 초반은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실존인물의 역사적 배경은 다른 글에서 확인가능.
이런 배경 땜에 이런 캐릭터가 만들어졌구나 정도로만 넘겨주세요
https://hungmusarc.tistory.com/m/50

디진 나레이터 있으면 소개시켜줘 - 어느 아나키스트 이야기

이번 쇤베른 콘서트에서 루케니를 맡은 야콥스가 밝은 갈발 곱슬이길래 우우 근본없다 쿠녀석이 선녀였다(이유 : 번역공장 공장장님이 먼저 보러 갔을 때 쿠로쉬 잘하는데 대충하더라 하길래

hungmusarc.tistory.com


 

 

1. 루케니 본체들 이야기



헝가리에서 올린 엘리자벳 얘기할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는 인물이 2명 있습니다. 첫번째는 당연히 초록악령 죽음이고요.

뇌 : 님 엘리자벳 토드 좋아하지
심장 : ㅇㅇ
뇌 : 토드 본체도 좋아하지. 저인간 보려고 헝가리행 비행기도 탔잖아
심장 : ㅇㅇ
뇌 : 자 그럼 이걸봐 헝가리산 죽음이야.
심장 : 끼에엑 저리치워욧

이런식으로 정신오염 시켜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거든요. 무슨 그레이트 올드 원도 아니고. 그 이후 좀 정신차려서 최애에 눈돌리려고 해도 헝가리 엘리자벳 얘기할 때 루케니패싱 한 건 뭐겠습니까.

루돌프와 마리 주례를 보는 루케니..는 배우장난이고 롬쥴의 결혼식 장면.


저거 롬쥴 로렌스 수사님이잖아. 루케니는 저 나이까지 생존하지 못했는데 뭘까 저건. 일단 동아시아의 유교인간에게 절 3번 받으시지요.
루케니를 맡았던 배우가 공경해야 될 연령대의 분이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루케니를 맡은 배우는 'Földes Tamás'로,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자애로운 원흉인 로렌스 수사님을 맡으셔서 그 인상이 너무 강했습니다. 물론 헝롬쥴 특성 상 거기서도 성깔 강한 연기를 보이셨지만요. (ex. 장례식에서 물건 던지며 화풀이하는 수사님)

이 때 의상은 망사가 아니라 가죽이네요. 아들 앞이라고 평범한 거 입었나


그리고 또다른 배우인 'Mészáros Árpád Zsolt'가 루케니를 맡았는데, 이 배우는 롬쥴에서 앙큼한 망사 고슴도치 벤볼리오로 더 익숙했습니다.


또 다른 배우는 1996년 초연에 어린 루돌프 했다가 무럭무럭 자라 20cm만 더 컸면 내가 죽음하는 건데 외치던 야망찬 루케니가 되고.(초연 토드들 키가 192, 193cm였음) 어렸을 때부터 봐서 르베이가 이사람 루케니를 보고 싶어했다는 인터뷰가 남아있더라구요. 자국이라 그런지 칭찬 참 후한 사람이야.

대신 초연 죽음을 맡았던 실베스터와 함께 콘서트에서 역효도하는 '내가 거울이라면' 노래를 하게 됩니다. 예전에 자막도 만들어서 올렸네요. 그 때 왜그랬지....


그러다보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 없이 키치팔이를 했던 장물아비와, 루케니가 저리도 통통했나, 배고픈 루케니와 행복한 돼 아니 아나키스트... 저 분은 후자를 택했구나. 헝가리엔 브루넷 곱슬이란 인재가 저리도 없나 통탄할 지경했거든요. 저게 배우 돌려막기의 폐해지. (과장입니다. 헝가리는 극장이 판권을 사서 시즌 레파토리로 운영하는 방식이라 극단소속 배우(&가끔 객원배우) 위주로 계속 굴립니다)
이러다보니 헝가리판에선 최애만 봐도 심장이 차가워지니 덕질보다는 분석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최근엔 심장과 타협해서 다시 헝가리버전 엘리자벳을 봐보니 생각보다 루케니를 더 흥미롭게 연기하더라구요. 비주얼 때문에 너무 많은 걸 놓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루케니들은 유쾌한 아나키스트, 신중한 혁명가, 죽음 무서운 줄 아는 인간, 미친놈 루케니 완전 또라이지(ft.넥)이었다면 부다페에서 올린 루케니는 정석적인 나레이터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멍청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나레이터요.
타마스가 연기하는 루케니는 익살스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오히려 좀 연기가 무거운 편입니다. 어떤 역사의 일부를 다루면서 본인이 말하는 이야기 자체를 한심하게 여기는 태도가 중간중간 보입니다. 헝가리 엘리자벳이 연출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엘리로 얘기하고, 루돌프로 독립이 얼마나 절실했나 보여준다면 루케니를 통해서는 냉소적인 시선을 통해 제 3자인 척 그 시대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당시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엘리자벳을 포함한 합스부르크 황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빈과 헝가리 시민들을 모두를요.

 

 

2. 실존인물들의 사후 tmi


엘리자벳의 암살범, 루이지 루케니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입니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떠돌다 스위스에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죠. 엘리자벳 사후엔 제네바 감옥에서 종신형을 받았다가 감방에서 자기 벨트로 목매달아 죽었고.

비엔나 초기 정신병원이었던 Narrenturm (바보들의 탑)

이후 머리만 박제되어... 하여간 세기말 빈 인간들 다 미친 인간들아냐. 제네바 법의학연구소에 몇십년 동안 보관되어있다가 비엔나 나렌투름(비엔나 최초의 정신병원 및 의학연구소. 현 병리해부학박물관 / 뮤지컬에서 엘리자벳이 간 곳은 브륀펠트의 로어 오스트리아 주립병원으로 다른 곳)로 옮겨졌다고 보관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머리를 왜 그렇게 오랫동안 보관했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고. 추측하건데 뇌를 통해 범죄자 심리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 방치된 채 잊혀져서 지역 기자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암살현장 부두의 놋쇠명판만큼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즈 1986 기사 발췌)

요제프 묘만 심플한 이유는 본인이 원해서였다고.


참고로 합스부르크 황실 묘지는 빈에 있는 카푸친 황실묘지에서 갈 수 있습니다.
엘리자벳과 요제프, 루돌프가 나란히 있고 요제프 묘만 제일 심플함.

실존인물 tmi를 여기까지 찾은 이유는...헝가리에서 해골가지고 뭔가 이상한 연출을 하길래 껄쩍지근해서 찾아보다가....라는 건 대외적 변명이고. 혼자서 루케니 덕질만 하다보면 사람이 좀 맛이 가게 됩니다.



최애 루케니 배우(=05dvd버전의 세르칸 카야)는 노잼 독일어 tv드라마로 빠지더니 동명이인의 터키 가수가 유튜브에 등장해서 터키 슈퍼스타가 되고, 뮤배 세르칸 카야는 검색결과 1페이지에서 사라지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한다거나.
그러다 보니 이상한 캐해 들이밀며 괴상한 고증 가져오거나, 다른 뮤(더라키라던가, 루돌프라던가)를 보며 오 저기 저 황태자 까는 지옥의 주둥아리 나레이터가 데리고 다니는 꼬맹이는 루케니가 틀림없어! 10대라니 나이도 딱 맞네! 적폐 크로스오버를 밀게 됩니다.


어디서 저런 이태리 사람을 데려왔대


여튼 루케니는 극 중 중간중간 이탈리아어로 비아냥거리거나 욕하지만 일단은 프랑스 태생 이탈리아인입니다. 하지만 헝가리에서 올린 루케니는 걍 헝가리인인 듯. 아님 이탈리아인이거나. 중간은 없고 늘 극단적이죠.
아래부터 얘기하는 건 헝가리 특수인 내용이 많아서 딴 나라에선 이렇게도 올렸구나ㅇㅇ 참고용으로만 읽으시면 좋습니다


 

3. 루케니의 험한말 나쁜말 쇼미더키치 퍼레이드

 


헝가리에선 나레이터라는 인물을 자국 역사(=오헝제국)를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용도로 잘 사용하는 편입니다. 황태자 루돌프(aka 더 라스트 키스) 뮤지컬과 함께 엘리자벳에 나오는 나레이터 루케니 역시 그렇고요. 헝가리 번안 패치를 거치면서 지옥에서 올라온 주둥아리가 되어서 앙상블곡 가사가 더 과격해지는데요.





루케니가 부르는 곡들의 박자 역시 미친 1.5배속으로 스피디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헝엘리만 듣다보니 박자감각이 좀 이상해져서 적당히 빠르니 좋지 않나? 간주가 빨라 봤자 얼마나 빠르겠어 객관성을 잃은 상태로 라센 공연이랑 붙여봤는데 군악대도 아니고 이렇게 빠를 줄은....
(참고로 헝가리는 커튼콜 때 박자맞춰서 군대박수침. 왜 그런지 아직까지 모르겠음)




미친 박자에서 더 얼척없는 건 가사입니다. 1막의 선동곡인 밀크에서 루케니는 가스통 아니 우유통을 든 쁘락치나 다를 바 없이 행동합니다. 선동과 날조의 요점은 공감하는 척 하다가 성으로 가자! 외치거든요.


루케니
죽어야 해, 형벌의 시작이다!
독재는 멸망해야 한다
투쟁. 인간의 가치를 드높여라!
성으로 가자, 민중을 자유케 하자!

분명 밀크인데 2막의 HASS처럼 험한 분위기가 민중 사이에 조성됩니다. 그러고보니 어째 헝가리의 민중 봉기 장면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윗것들을 죽이자며 극단을 달리는 것 같은데 공산주의를 겪은 역사의 특수성 때문일까요.





파리의 시민들
불평하지마 때가 왔다, 이제 일어날 때다
너희 귀족들을 위한 지옥이 기다린다!
왜냐하면 사람은 두 발로 설 때 인간이 되고, 사슬에 묶이면 개가 되거든
그 무엇도 섬기지 않을 때 너는 인간이 된다!

참고자료 차 모차르트의 혁명 장면도 같이 올려봅니다. 왜 이런 장면을 번역했냐면 계정주들 모두 약간의 빨간 피가 흐르고 있어서.


 


키치에서는 루케니의 못된 말 험한 말 솔로랩배틀이 극에 달합니다. 심지어 헝가리는 키치를 깈으로 발음해서 더 빨라져버림. 루케니는 대관식날 굿즈를 가지려고 몸싸움하는 헝가리 군중들을 비웃으며 그들을 향해 이런 말을 꺼냅니다.


루케니
Csak annyi még a lényeg: drága Sisikétek ócska érdekember, ó, szegény!

요지는 말이죠, 사랑스러운 씨씨가 케케묵은 이기주의자라는 겁니다, 가엽기도 하지!


문장 하나하나에 엘리자벳에 대한 비난을 쑤셔넣고 있습니다. 독일어 버전에서는 스위스 비밀계좌를 비난했는데요. 헝가리 버전에선 스위스고 자시고 한 문장에 비난을 다 넣으려고 "명망을 얻기 위해, 그녀는 빈의 우유로 은행을 살찌웠죠." 밀크에서 내용이 이어지도록 우유 얘기를 넣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키치에서 좋아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루케니
Mi tiszteletre méltó,
mi fényes itt e kép,
우리의 존경을 받는
빛나는 구경거리,

mi más maradt e fényből,
csak ósdi hulladék: csak giccs
이 빛 외에 우리에게 남겨진 건 뭐겠어요,
낡은 빠진 쓰레기 뿐이죠
키치!


kép이 그림이란 뜻도 강하지만 동시에 구경거리란 말도 되고. 루케니가 그림 들면서 kép이라고 말하는 건 구경거리로서의 엘리자벳을 비꼬는 의도가 내포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라임에 미친 인간들이 giccs(키치)랑도 라임맞추고.
그도 그럴 것이 엘리자벳을 보러온 관객과 2막 초반 엘리자벳의 대관식을 구경하면서 기념품을 사려고 열광하는 헝가리 시민들에게 물건을 팔며 저렇게 비꼬니까요.


더 나아가 '내 새로운 상품'인 키치 rep에선 재밌는 해석이 나옵니다. 늘 관객을 향해서만 비아냥 거리던 루케니가 이번엔 정확히 죽음을 향해 말합니다.


루케니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그림들 좀 보세요.
누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슬픔과 애도-당신의 마음에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습니까?
당신도 믿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죠,
위대한 힘도 심연으로 쉬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루돌프 장례식 후 절망하는 엘리자벳을 바라보다 얼굴을 돌려버리는 죽음을 향해 루케니는 말합니다. 고귀한 인물들 역시 슬픔에 고통받는 인간일 뿐이며, 죽음 역시 인간의 감정에 휘둘리는 중이냐면서요. 귀족을 비웃으면서 동시에 토드에게 님 동요하냐며 쫄? 묻고 있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미 죽었다고 무서운 게 없는 걸까요.

나레이터 특성 상 한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을 얘기하는 것 같으나, 모든 답변에 깐죽대는 건 프롤로그부터 시작되긴 했습니다. 재판장의 질문에 '그녀는 하인리히 하이네를 사랑했다' 라면서 엘리가 덕질하던 인물까지 까발리면서요.


그 외에도 '신이시여 보우하소서 우리 젊은 황제'에선 오스트리아의 군대 얘기를 하면서 조피를 '황궁 유일한 사나이'라고 말하다가 정말 귀여운 여인이라면서 어그로를 끌지 않나. 이런 깐죽거림은 바트이슐로 이어져서.

어린 씨씨는 황제에게 청혼받은 상황인데도 지루해 죽을 뻔 했는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고만 철없이 말하고, 요제프는 어머니가 세운 계획이 이렇게 엎어졌다며 어쩐지 어머니의 계획에 반대하려고 다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루케니는 이렇게 말하는데요. 마지막 문장이 다른 버전들과 조금 다릅니다.


(한국어)
계획이란
아무 소용 없어
무슨 계획 세워도
확실한 건 오직 한 가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헝가리어)
어떻게 좋지도 않은 계획을 좋다할 수 있을까
현실이 뒤엎어버린다면 말야
계획의 운명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저 실패와 추악한 파산
이라는 교훈

(독일어)
계획이 무슨 소용이람. 아무리 교묘하게 짜봤자
늘상 이론에 불과한걸.
확실한 건 하나 뿐입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절대 되는 법이 없다는 것!



독어와 한국어 버전에선 계획해도 아무 소용없다, 라는 식으로 얘기하나 헝가리판에서는 님들 세운 계획 폭삭망했다고 아예 확정 내려버리거든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되지 않아' 파트에 일부러 박자 맞춰서'~라는 교훈'이라고 말하며 아닌 척 내숭 빼고 있습니다. 오타쿠 특화형으로 말하면 ~난챳테(랄까나)......마땅한 예시가 생각안나는데....여튼 이런 뜻의 의미로 사용한 거 같습니다. 못된 말 하다가 갑자기 교훈주는 척 하다니 그게 더 나쁜 놈 같은데.

알바 중 대놓고 시가피우며 농땡이 피우는 루케니. 우리 루케니는 저런 부르주아지 아닌데



'종말을 기다리며'에선 카페 알바로 일하는 루케니입니다만, 빈판과 다르게 두 종류의 군중들이 등장하면서 이 장면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라센에서는 이 때 죽음이 있던 거 같던데.
헝가리판에서는 카페 안에서 빈의 시민들과 헝가리 시민들이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다를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카페의 지식인층과 루케니의 상황이 바뀌어서 흥미로웠는데요. 사람들은 어떤 사건(전쟁 혹은 독립)을 기다리며 무료함을 떠들고 있으나, 루케니만은 이 모든 상황은 쓸모도 없단 걸 알고 있어서 환멸만 남은 나레이터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아. 추가로 혼란한 시절들 직후 엘리자벳 헝가리판에서만 남아있는 곡이 있습니다. 엘리자벳의 사냥여행에 관한 곡으로 hass처럼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외침으로 가득찬 'jagd 사냥(A vadászat)'입니다. 합스부르크 황가가 쇤부른궁을 사냥용 궁전을 사용하며 자주 사냥 여행을 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고. 그런데 너무 세기말 분위기인지 초연 빈판과 헝가리판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버전에서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헝가리판에선 또 씨씨의 쉼없는 질주에 대해 루케니 마지막 독백이 달라졌는데요.


(독일) 루케니
오 신이여, 그녀가 뛰어오른다!
그리고 그녀는 벌써 지나가버렸습니다!

(헝가리) 루케니
그녀가 해냈어. 승리했어.
언제나 그랬듯이....모든 이들에 대항해서.


독일어 버전에선 유럽을 통틀어 훌륭한 기수였던 씨씨가 말을 타면서 뭔가를 쫓거나, 혹은 두려워하던 뭔가에 쫓기던 샤냥감처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헝가리 버전에서는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뛰어넘었고 마지막에 승리했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헝가리판에서는 엘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다른 판본보다는 좀 더 첨언을 넣었습니다. 운동중독에 거식증 얘기와, 군인보다도 더 승마를 잘했다는 장면을 추가하고. 엘리자벳의 삶에 관한 단편을 보여줌에도 그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본인만이 아는 일이란 주제를 위해서일까요.






아, 그리고 쟤 왜 저래?! 외쳤던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벨라리아 이전 루케니의 나레이션 장면에 해골을 데려오더라고요. 지가 햄릿이야 뭐야 하는데 진짜 해골에 입 맞추네. 뭔데 대체. 하지만 오타쿠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팠는데 여전히 심장이 뛰면 심근경색 의심할 때라던데.


해골을 들고 독백하는 모티브는 햄릿을 연상케 합니다(깨알영업 - 셰익스피어가 무덤에서 뛰쳐나올 각색을 한 헝가리판 롬쥴 역시 재밌습니다!)

"아아, 불쌍한 요릭! 호레이쇼, 나도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재주꾼이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막히게 잘했었지. ... 지금 이 꼴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끼치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야.
여기쯤 내가 수없이 입맞춤했던 입술이 달려 있었겠지. 이제 그 익살, 광대 춤, 노래는 어디로 갔느냐?"

햄릿은 무덤 속에서 궁정광대 요릭의 해골을 발견하며 햄릿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합니다. 죽음에 도달하면 그가 바라던 것은 모두 의미 없어진다는 것을요. 해골을 가져온 루케니의 나레이션은 지금 하는 이 모든 내용들은 이미 죽은 이들의 입을 빌어 얘기하고 있으며, 죽음 앞에선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는 걸 말함과 동시에 곧 등장할 조피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헝가리판에선 죽음이 직접 등장해서 조피를 데려감)
이후 '침몰하는 배rep'에서 비극적으로 죽은 엘리자벳의 친인척들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외치던 'ashes to ashes,' 장례 진혼시를 인용하는 것과 이어지고요.

하지만 루케니(본체)가 목만 남긴 채 몇십 년동안 보관되었다는 걸 아는 덕후는 ...저거 지 대가리아냐? 라고 적폐해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어렸을 때 성경만화 적당히 보고 살로메 얘기 좋아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루케니는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보도록 제시합니다만, 그는 믿을 만한 나레이터가 아닙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거든요. 헝가리판의 루케니는 익살을 떨면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멍청한 이야기일 뿐인 이 재판에 대한 환멸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익살이라는 방식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듣도보도 못한 루케니가 튀어나왔는데요.... 바로 죽음에게 어그로를 끕니다. 저 루케니도 제정신은 아니야.




4. 나레이터와 죽음과의 관계



엘리자벳이라는 극에서 루케니는 목소리로만 나오는 재판장을 제외하면 대화하는 인물이 없긴 합니다. 물론 '침몰하는 배rep'에서 죽음이 꼬챙이 주면서 루케니 부르는데, 그건 명령이지 제대로 된 대화입니까.
그런데 헝가리판에서는 놀랍게도 상호작용이란 걸 합니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프롤로그에서 루케니가 죽음의 천사들에게 처맞는 걸 보며 아이고 어르신 공경해라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만 극 중 루케니와 토드가 같이 나올 때마다 저인간 목숨걸고 죽음 앞에서 어그로 끌고 있는데..? 납득하게 되더라고요.



오랜만에 모국 온 마테톧에게 손등뽀뽀 날리는 루케니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이후 다음 장면인 '우유'의 빈의 시장으로 배경이 바뀌는 와중에도 씨씨에게 차인 토드는 여전히 서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 넘어가려고 뛰어오는 루케니를 한 팔로 멈춰세우고요. 하지만 헝가리의 나레이터는 깡으로 버텨야 한다는 룰이라도 있는 걸까요(ex. 더라키에서 비밀경찰에게 처맞으면서도 황실까던 나레이터) 루케니는 토드가 제일 열받아할만한 주제인 엘리자벳 얘기를 하면서 막아세운 죽음의 손등에 입을 맞춥니다.
이야, 진짜 내일은 없는(실제로도 없음) 인간이 할 수 있는 어그로.

저런 걸 혐관이라고 하는 걸까요. 덕질 초기에 혐관 뜻을 잘못 배워 아 같은 날 둘 다 입관하면 그게 혐관이구나(ex.헝롬쥴의 머큐시오와 티발트)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이미 죽었으니. 쟤네도 혐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죽음에게 님 쫄? 묻는 루케니


루돌프가 죽은 뒤 '추도곡'에선 죽음은 엘리자벳을 거절했으나 심적인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루케니가 나타나 위에서 적은 것처럼 '내 새로운 상품'을 부르며 엘리자벳과 죽음 두 인물을 함께 조롱합니다. 죽음 앞에서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그림을 보라고 엘리자벳의 키치를 눈 앞에 가져다댑니다. 와중에 비꼬는 대상 앞에서 추가타 까지 더해서 계속 자리에 남게 만들다니. 진짜 지옥에서 올라온 주둥아리.

헝가리판에선 붉은 색과 초록색 조명을 자주 쓰더라구요. 그래서 저 초록악령이 눈에 잘보임



그렇게 구업을 쌓은 업보일까요. '침몰하는 배'에서 루케니는 비극적으로 사망한 엘리자벳의 친척들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죽음과 독대하면서 프란츠 요제프, 오스트리아의 황제라고 소개하는데요

빡친 죽음이 루케니를 밀쳐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란츠 요젶, 오스트리아의 황뛟! 하고 퇴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제프 뒤에서 움찔거리고... 아 이런 혼란함 너무 재밌다 진짜......


그 후 루케니는 죽음이 내려보는 앞에서 씨씨 찌르고 튄 뒤, 에필로그에서 죽음의 천사들에게 끌려와서 목매달고 디집니다. 그들은 오래오래 불행하게 잘 살았답니다 엔딩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침몰하는 배'에서 죽음은 루케니에게 흥미로운 말을 합니다. 루케니에게 '내 아들아!(fiam)'라며 엘리자벳을 죽일 송곳을 건넵니다. 헝뮤입덕 초반에는 왜 갑자기 루케니를 아들이라 부르는가 다른 뮤지컬 대사로 짐작했었는데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베로나'에서 영주의 대사 '그 자를 죽이겠다(Halál fia!)'는 직역하면 죽음의 아들로 만들겠다 라는 문장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저 말이 시대의 죽음, 혹은 민족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 문장이 자국 내 민족소설급으로 취급받는 책 제목이었기 때문에. 3대에 얽힌 한 가문이 죽음을 마주하며 시대적으로 민족적으로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염상섭의 삼대와 같이 헝가리 학생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주역이라고.
평론가들이 저 책의 제목은 민족 혹은 시대의 죽음이라고 명시했던 글도 있었고요. 소나기의 보라색은? 복선! 정답은 아니더라도 무척추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것처럼, 자동반사적으로 의미가 뒤따르는 문구일 거라고 번역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후 더 찾아보니 저 죽음의 아들이란 말이 관용어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루케니에게 말할 땐, '받아라 루케니. 망자여!' 라고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던진 말이니 내 아들아! 가 아니라 내 소관인 자, 망자여 라고요. halálfia (= death + son) 'bound to die'로 해석되어
→ 한국어론 그 자식 내 손에 잡히면 아주 죽은 목숨이다! 라고도 이해할 수 있는데

현지관객들 : 아 받아라, 망자여!를 이렇게 관용어로 사용한거군
나 : 루케니가 토드 아들인가...? 뭐야 나 짭근친 좋아하는 거 어찌 알고. 근데 이건 못먹겠는데. 헛소리나 하고.
이래서 문화적 맥락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여기서부턴 돌이킬 수 없이 나간 추측인데 죽음의 아들이란 말이 시대를 종식시키는 무언갈 의미한다면, 루케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합병을 상징하는 엘리자벳를 죽임으로써 시대와 민족에게 종언을 고하는 역할을 하기에 fiam아들이라고도 쓴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헝가리에서 올린 엘리자벳은 자국의 역사와 관련된 상징과 암시를 추가하여 그들의 시선에서 역사를 다루고자 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부다페 극단소속 배우 중 루케니로 찜해뒀던 분은 요제프를 맡고서 재수 말아먹은 연기를 상당히 잘했는데요. 진저 루케니는 존재할 수 없다 이거지 두고보자. 이건 또 너무 길어지니 언젠가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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