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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뮤지컬

뮤지컬 엘리자벳 줄거리로 보는 19세기 오스트리아 역사 및 각색 (1)

by 헝뮤아카이브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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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 라센 10주년이 올라오는데, 곧 30주년을 맞이하는 헝가리 버전 엘리자벳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과거의 망령이 되어 쓰는 뮤지컬 엘리자벳(헝가리ver) 개론.
귀찮다는 이유로 헝엘리 관해서는 한꺼번에 정리한 적이 없어서 따로 적어보려고 해요. 헝가리뮤 덕질하는 티스토리라 독일어판 얘기를 기대하셨다면 아래 글에서.
그래도... 헝뮤도 관심가져주기...

 
 
 
 
독일어판 엘리자벳 관련 얘기는 여기서.
1) 뮤지컬 제작과정 및 가사에 담긴 역사배경 

엘리자벳 뮤지컬 제작 과정과 가사에 담긴 19세기 유럽 역사적배경 탐구 (1)

헝가리판 엘리자벳과 더라키 사라진 나레이터의 떡밥이 없어서 당시 공연 평론을 찾아 해외논문에 손대게 되었어요. 그 외에 남은 건 최소 17년전 이전 웹기록이라 404 not found 무의 세계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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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리자벳 배경이 된 오스트리아 비엔나 &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 기타등등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떠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 투어리스트

뮤지컬 과 덕질하다가 뮤지컬에 나왔던 장소들이 헷갈려서 따로 정리해보려고 해요. 겸사겸사 가봤던 곳도 정리하고, 나중에 가려고 찜해뒀다가 코로나가 터져서 못갔던 것들도 울면서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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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뮤지컬 엘리자벳 의상

뮤지컬 엘리자벳 드레스 - 전세계 씨씨의 황후 의상

1. 별 드레스 18세기 초상화가였던 프란츠 빈트하러의 엘리자벳 초상화를 기반으로 만든 드레스. 오리지널 드레스와 가장 유사하다고 합니다. 이건 2019 쇤부른 궁전콘 사진인데 개인적으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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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헝가리 엘리자벳에서 따로 다루는 것


헝가리에서 올렸던 엘리자벳이 흥미로운 점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란 배경에서 본인들이 겪었던 역사를 뮤지컬 스토리에 자연스레 녹여냈다는 것입니다.
1992년 초연의 빈판을 베이스로 한 96년도 다카라즈카(여긴 로맨스 얘기가 더 강하지만), 2012 한국 라이센스 버전에서는 원작과 동일하게 오스트리아의 시선에서 서사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1996년도 첫 공연을 올렸던 헝가리 엘리자벳엔 피지배자로서의 민감한 과거가 섞여있습니다. 당시의 이중제국 체제에 부정적인 관점을 포함하면서요.

부다페스트 극장에서 올린 엘리자벳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포함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유머와 함께 나오는 묵시적인 분위기입니다. 헝가리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가의 종말과 몰락을 담으면서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게 드러나거든요.

헝가리에서 이런 각색이 가능했던 건 작곡가인 르베이 실베스터(Lévay Szilveszter. 헝가리에선 한국처럼 성 다음 이름을 적음. 계정주 본진이랑 이름 같아서 헷갈리면 안 됨)가 헝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관대한 헝가리인이라 96년부터 자국에서 올릴 때 연출이 다 뜯어고쳐도 허허허 니맘대로 해라 다 받아들였습니다.


저 반짝이광대 때문에 우리장르 아닌 척 외면하고 다님

....즉슨 이런 세기말 독이 30년 째 덜 빠졌다는 말입니다. 지독한 관대함이다 진짜.
그래서 연례행사처럼 예상치 못한 엘리 캐슷이 떠도 범죄자 아니면 됐지 뭐 시큰둥 한 건 저 이유도 있습니다. 저 할배는 모국에서 죽음을 초록악귀로 올려도 허허 다 좋다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세기말 뽕이 함께 하니 사실 헝가리버전의 엘리자벳은 크게 관심없는 편에 속했습니다. 부다페스트 극장에서 올린 다른 뮤지컬들은 스토리부터 연출 전체에 파프리카 가루 팍팍 뿌려서 매운 맛인데, 엘리는 상대적으로 슴슴한 편이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극을 제멋대로 각색하지 않으면 라이센스로 들여온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나. 이하 다른 뮤지컬들 예시 :

로미오와 줄리엣 : 14세기 가죽자켓 입은 베로나 사람 모두가 불타는 연출보고 crazy. 당장 계약해 외친 제라르.
레베카 : 이히가 맨덜리 가주가 되기까지의 승리와 권력쟁취극과 극장 맨끝줄까지 연기로 채우는 불쑈
모차르트! : 있는 그대로의 내모습 다 받아들여 달라며 모차르트 스트립쇼 넣음

엘리자벳은 2000년도 이전에 올린 극이라 오리지널과 크게 달라진 연출도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같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다룬 뮤지컬인 루돌프(a.k.a 더 라스트 키스) 2005년에 올린 세계 초연에선 나레이터의 입을 빌려 시니컬하게 황태자 면전에 대고 신도 구제 못할 머저리! 외치던 헝가리의 비뚤어진 시선을 잊고 있었습니다.
최근 다시 극본 읽어보니까, 엘리자벳을 바라보는 자체적인 시선 또한 상당히 흥미롭더라구요.


바뀐 연출은 엘리자벳에 관해서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엘리의 입을 빌어 끊임없이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반면 루돌프의 서사를 강화하여 헝가리가 피지배국으로서 독립을 얼마나 절실하게 여겼는지 보여줍니다. 사실 처음에 엘리 역사 생각 안하고 봤을 땐 (뮤지컬에 누가 역사고증을 기대해!) 오 엘리가 여왕이면 좋은 거 아냐? 쟤네 왜 루돌프 뒤통수쳐 했던 과거가 생각나서 정리해보는 오헝제국 간략한 역사.




2. 엘리자벳에 나온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지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지도


엘리자벳 2막의 이옌(Éljen 만세의 헝가리어, 근데 귀찮으면 엘젠이라 부름)에서 나온 것처럼,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와 '대타협'이라 불리는 협상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중제국을 세웁니다. 헝가리는 이제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 거죠.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제가 헝가리의 국왕을 겸하면서도 헝가리에선 자치적인 의회와 정당, 법과 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옌에서 헝가리 민중들이 '헝가리에 자유를 가져온 엘리자벳'이라고 말한 이유도 속국이긴 해도 어쨌거나 독립된 지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루케니의 대사처럼 유럽에 민족주의가 퍼져나가면서(식민지 시기를 겪은 나라라면 특히나) 헝가리 귀족 중에서도 완전한 자유와 국가 독립을 원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헝가리 버전의 엘리자벳 연출은 여기에 더 집중을 했고요.
추가된 장면에서는 환호하는 군중과 달리 회의적인 헝가리 귀족들이 몇 마디 던집니다.

바티야니:
이게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입니까?
이건 우리의 족쇄를 길게 늘려만 놨어요.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을 때만이, 헝가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안드라시:
정치 내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얻을 수는 없는 법이네, 바티아니!
지금은 인내할 때야.

바티야니:
헝가리는 이미 충분히 인내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부더의 대관식에 있는 헝가리 귀족들의 대사에서 '그들의 자유는 유예된 것'이라는 비판적인 대사를 던지나 지금은 인내할 때라며 참고 견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사는 미래에 그녀의 아들 루돌프를 회유하면서 이어지고요.

부다 - 페스트 지역으로 나뉘는 부다페스트 지도
부다 - 페스트 지역으로 나뉘는 부다페스트 지도

당시 헝가리는 다뉴브 강을 끼고 부더 지역과 페슈트 지역으로 나뉘었는데, 이중제국 수립 직후 부다페스트로 합쳐지며 제국의 2번째 수도라는 명칭이 붙였습니다(첫번째는 당연히 빈). 하지만 전 유럽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싹트는데 보수적인 제국주의를 강화한 이중제국은 모순의 왕국이라는 비판 또한 따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두 나라간의 관계가 평등해보이지만, 외교 정책의 주도권은 대부분 오스트리아였거든요. 그래서 엘리자벳 2막 '음모'에서 헝가리 귀족들이 루돌프를 왕으로 추대하려면서 아빠 도장 훔치라고 했던 이유도 독립된 자치 국가를 원했기 때문이었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이중제국이라도 쓰는 나라마다 쓰는 언어는 달랐다는 점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선 독일어를, 헝가리에선 헝가리어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는 헝가리의 민족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기도 했습니다. 독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민족 간 상호 불신이 심해지는 상황이었거든요. 자국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헝가리에서 징집한 군대에서 독일어로 명령을 쓰는데 큰 반대운동이 일어날 정도로요.
그...우스갯소리로 유럽어권에서 님 슈퍼파워 뭐임? 나 헝가리어 할 줄 알어ㅇㅇ 할 정도로 배우기 개떡같은 언어를 진짜...양심도 없지......


'결혼의 정거장' 카메라 앞에서 사이좋은 척 하는 황제의 재수없는 미소
'결혼의 정거장' 카메라 앞에서 사이좋은 척 하는 황제의 재수없는 미소


1막 헝가리의 도시로 떠나는 데브레첸에서 헝가리 귀족들이 '황후는 헝가리어로 떠든다지' 라고 말하면서 엘리자벳에게 호의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최고지배층인 황후가 자신들의 언어로 말한다는 건 큰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엘리자벳은 루돌프와 함께 있을 때 헝가리어로 얘기한다는 기록도 있고. 엘리자벳이 신뢰하던 시종 대부분은 헝가리인이었는데, 암살 당시까지 함께 했던 사람 역시 이다 페렌치(Ida Ferenczy)는 헝가리의 백작부인이었습니다.
(이건 딴소리인데 이 백작부인 역시 엘리를 굉장히 좋아했는지 황후 사망 이후 부다페스트에 엘리자벳 기념 박물관을 설립했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상당부분이 파괴되었지만. 헝가리 케치케메트(저사람 고향임. 컨셉 참.)에 있는 치프라대저택 박물관에서 엘리자벳과 관련된 온라인 관람도 가능했거든요.
내용이 알차서 좋았는데 내수용이라 설명은 다 헝가리어. https://kecskemet-cifrapalota-202012-sisi.360tura.hu/)


사라예보 사건 - 루돌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의 암살로 1차대전 발생
사라예보 사건 - 루돌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의 암살로 1차대전 발생


그러나 루돌프의 자살, 엘리자벳 황후의 암살은 헝가리 국가의 사람들에게 이중제국의 미래에 의심을 품게 만들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헝가리 왕국 내부에서도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있었기에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자민족중심의 독립운동을 시도하면서 제국의 체제에 저항했었고요.
위태롭던 이중제국은 루돌프 사후에 제국 마지막 황태자가 되었던 페르디난트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조직에 속한 세르비아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 계기로 발생한 1차 대전에서 제국은 완전히 해제되었고요. 1차 대전 중반에 요제프 역시 고령의 나이로 사망, 침몰하는 제국의 배에서 그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누렸던 마지막 황제가 되었습니다.



3. 헝가리 엘리자벳에서 달라진 점 - 엘리자벳을 이해하는 시선



헝가리에서 올린 엘리자벳은 다 뜯어고쳤던 타 뮤지컬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사를 보니 다른 점들이 꽤 많더라고요. 바뀐 내용에서 추측할 수 있는 건 헝가리 연출에선 자국의 역사적 시선이 강하게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속국이었던 헝가리의 편을 들었던 엘리자벳이 받은 숭배와 감사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과거에 신화처럼 숭배했던 전통을 누구보다 더 신랄하게 조롱하거든요. 씨씨를 비판적인 모습으로 그리면서도 동시에 그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어서 흥미롭습니다.



프롤로그의 대사부터 우리의 시선을 다르다! 선전포고 하며 진행되는데요. 1.5배속으로 칼퇴를 바라는 오케스트라는 그렇다 치고..... 프롤로그에서 망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망자들
Vidd csak őt, Halál!
Nemlétre ítéltük őt!
그녀를 데려가소서, 죽음이여!
실재하지 않는 판결을 받은 그녀를!

재판은 없다고 외치면서(특히 조피와 루도비카) 망자들이 훈수두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 판결문이고, 결국 이 극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재판에 관한 픽션이라고 초반부터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헝가리 버전의 엘리자벳에선 '본인의 자유'보다 '본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다룹니다. '나는 나만의 것' 헝가리판 제목이 '그건 더이상 내가 아니에요'로 바뀐 것처럼요.

엘리자벳
하지만 이해해줘요. 이 위험을 겪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에요

헝판 엘리의 가사는 엘리자벳이 본인의 독립적인 자유를 바란다기 보단, 위기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 라는 문제에 봉착한 듯 보입니다. 황후라는 지휘나 역할이 아닌 무엇이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요.

독일어 버전에서는 '나 자신의 주인은 나 뿐이다' 라고 얘기하나, 헝가리어 버전에선 '니들이 내 자신의 캐해석을 망칠 수 없다,니들 캐해석 구리다'라며 스스로가 정의내리는 자기 자신이 있으며, 자유가 아닌 자아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비슷할 줄 알았는데 뉘앙스가 다른 건 2막의 '아무 것도' 역시 그렇습니다.

엘리자벳
삶이 음모와 기만으로 가득해도
이 땅에는 그 외에 다른 것도 아무것도 없기에

1막의 '나는 나만의 것'이 황실과 엄격한 규율과 마주한 직후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도전이라면, 2막의 '아무 것도' 에선 삶이 공허에 빠질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나만의 길을 가겠다며 말합니다. 독어판&헝어판에선 정신병원 방문이 2막 초반(꼬마 루돌프 노래 직후)에 나오기 때문에 아직 삶을 향한 에너지가 남아있어서 희망 한 스푼 넣은 분위기이긴 합니다.

이후 추가된 '내가 춤추고 싶을 때'. 당시 죽음은 헝가리인이나 독뮤로 수출된 마테(=05dvd판의 죽음)
이후 추가된 '내가 춤추고 싶을 때'. 당시 죽음은 헝가리인이나 독뮤로 수출된 마테(=05dvd판의 죽음)


사실 엘리자벳과 죽음이 처음 만나던 장면에서도 어린 씨씨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개인적으로 헝가리 엘리자벳이 토드의 세기말 반짝이 분장만 걷어낸다면 참으로 흡족했던 점 중 하나는 엘리자벳과 죽음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1도 꺼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엘리자벳 주변을 떠돌며, 제일 로맨틱한 대사는 자신의 세계의 여왕이 되라고만 하거든요.

엘리자벳이 헝가리의 마지막 여왕이자 제국의 종말이 다가오는 시기였기에 죽은 시대의 마지막 여왕이 되라는 해석은 너무 나간 걸까요. 하지만 2막 '침몰하는 배'에서 죽음이 루케니에게 '내 아들아'라고 말하며 암살을 명하는데, 이건 헝가리의 관용어인 '죽음의 아들=망자 or 널 죽이겠다!'와 연관있어서...
역사를 변태적으로 해석하는 헝가리 연출에선 너무 나간 것도 아니지 않을까... 이 얘기는 다음 포스트에서.

'이옌' 대관식의 장면. 꽃다발이 튤립인 이유는 헝가리의 국화라서.

4년 공연에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없는 대신 론도가 있지만(이후 공연에서 추가되긴 함) 헝가리판에선 초록악귀 아니 죽음이 자기 곡 외의 앙상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편입니다. 2막 '음모'에서 루돌프를 반역일으키게끔 유도하거나 루케니가 엘리자벳을 죽일 때 등장하는 것 외에도, 2막 초반 부더에서의 대관식에서 환호하는 군중과 황제 부부 사이에 섞여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엘리자벳이 여왕이 된 것 자체가 이중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 처럼요.

'벨라리아' 최애 댄버스인 나다시 베로니카가 조피 했길래 사심담아 한 컷.

이건 곁다리인데, 헝판에서는 조피의 마지막도 상당히 신경쓴 티가 나더라고요. 벨라리아에서의 조피는 이미 늙고 병들었습니다. 음모에 대해 따지러왔음에도 요제프는 휘청거리는 조피를 걱정하며 아들노릇을 하려고 하지만, 변명없이 황실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이라는 조피의 말을 듣자 황제로서 선을 긋고 냉정히 떠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조피의 곁을 지키며 데려가는 건 죽음입니다.(팔로 감싸거나, 뻡뻐해서 데려가거나. 죽음 본체마다 다름)


그렇게 퇴근 후 커튼콜에 나올 준비를 하던 조피를 연출은 한 번 더 붙잡습니다. 헝가리 엘리자벳에선 조피의 테마곡인 '황후는 빛나야 해' rep이 총 4번 등장하거든요. 1막에서 첫날밤 후 시녀끌고 처들어올 때, 1막 마지막에 소고기 챱챱 장미무스랑 우유목욕 할 때. 그리고 2막에선 1막과 데칼코마니처럼 대비되는 장면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2막 '말라디' 전 황후는 빛나야 해 rep. 거식증에 걸린 씨씨.

첫번째는 운동하다 쓰러져서 의사로 변장한 토드 만나기 전.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음식으로 사치스럽게 피부를 가꾼다는 장면에서 더 나아가 강박적으로 몸매관리를 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는 엘리자벳에게 하녀들이 제발 과일이라도 먹으라고 애원하는 장면입니다.

루돌프의 장례식 이후, 베일을 쓰고 황후는 빛나야해rep을 부르는 조피

2막에선 루돌프의 죽음 이후, 조피는 엘리자벳의 죄책감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황후라는 자리에 있음에도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안했다며 자책하는 엘리자벳 앞에 죽었던 조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조피
우리가 잃을 건 더이상 아무것도 없어.
아름다운 미래엔 남아있는 것도 없지.
네가 루돌프의 심장을 부쉈어.
왜 그랬었나
관대하여라
친절하여라

조피는 씨씨의 후회를 '황후는 빛나야 해' 멜로디에 맞춰 묻습니다. 그리고 1막 제일 초반 첫등장할 때 외쳤던 '엄격해, 냉정해' 대신 '관대해. 친절해' 완전히 정반대의 말을 하며 황실의 규율 대신 아들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았던 엘리의 죄책감을 키우는 걸 보고 와 정말 디테일하고 고약하게 감정선 챙기네 생각했었죠.





죽을 뻔 한 뒤 인생 120% 즐기려는 어린 씨씨


여튼 어린 씨씨는 그네를 180도로 타며 죽다 살아났는데 가지 마세요 검은 왕자님, 죽음과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 이것이 삶! 나는 내 자신이 될거야! 비혼주의를 다짐하거든요.
정확히는 결혼이라는 족쇄에 얽매이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말하지만. 이 말은 이후 곧 등장할 요제프와의 결혼생활은 그녀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일이 되고, 끊임없이 죽음을 원하게끔 하는 삶이라 암시합니다.

그러나 론...도........ 다음에 있는 곡이라 씨씨 대사는 늘 지나쳐서....너무 늦게 알았네요...... 사실 헝가리에선 론도도 아니고 '모든 길은 미로'라며 죽음이 엘리자벳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가사입니다. '모두가 날 두려워하지만 난 아름답다'라는 가사 때문에 뭔 개소리야 늘 넘어갔지만.



엔딩의 '베일은 떨어지고'의 가사에서도 엘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여전히 동일합니다. 자유에 대한 얘기보다는 내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길에 대해서요. 지금까지 다 가사 바꿔놓다가 불꽃 대사 나오니까 그건 살리는 게 얼척없지만요.

엘리자벳 & 죽음
나는 너와 함께 無 속으로 걸어갈 거야.
우리는 완전한 불꽃이 될 거야.
영원한 평화가 기다리고 있어.

이것은 죄악인가 선인가?
이 비밀은 내 것으로 남아있어.

엘리자벳: 왜냐하면 이것이 내 유일한 길이기에.
죽음: 오라, 내 것이 되어라
엘리자벳: 내 자신이 되는!


암살 장면 이후, 여전히 엘리는 삶에 미련이 남은 것처럼 무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노래 중간에 먼저 키스하는 건 토드입니다. 엔딩 장면에서 그 둘은 함께 퇴장하지 않고 홀로 남은 토드가 황후의 속드레스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끝납니다 .

헝가리ver 엘리자벳 마지막 장면


헝가리 버전의 엘리자벳에선 상징과 암시가 많은 편이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토드가 들고 나오는 씨씨의 흰 속드레스는 그녀의 삶에 대한 파편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에도 죽음 앞에서 남은 건 속드레스 한 벌이라는 것처럼요.
키스하고 엘리가 바로 쓰러지지 않아 저 죽음은 디멘터가 아니군 분장은 비슷해보이지만, 생각했던 추억.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크리피해요.

헝가리가 가진 엘리자벳을 향한 양가감정은 뮤지컬에서 엔딩에서 말하는 '내가 누구인지는 나 자신만이 아는 일'이라는 극 주제가 됩니다. 그러기에 엔딩에서 그녀가 누구였는지 명확한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엘리자벳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라며 끝냅니다.

전체적인 가사를 보면 엘리자벳의 자유보단 '당신이라는 존재를 헝가리에선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느낌으로 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헝가리 엘리자벳은 본격적으로 가사 번역하기엔 애매하게 부분만 바꿔놓았는데, 뮤지컬 본질을 또다시 지들 맘대로 흐렸거든요. 가장 중요한 문장인 내 삶은 내 것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고 그대로 갈 수 있었으나 또 바꾼 거 보면요.






4. 헝가리 엘리자벳에서 달라진 점 - 루돌프로 보는 헝가리 독립의 역사




헝가리에선 엘리자벳이란 인물을 향한 양가감정을 감성적으로 보여줬다면, 루돌프는.....솔직한 심정으로 더라키에서도 그렇고 저거 동네북 아냐? 싶기도 합니다. 독립과 관련된 자국 역사와 정치를 다루는 부분은 루돌프 쪽에 쏠렸거든요. 그것도 루돌프가 한계까지 몰리며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서사를 강화하는 입체적인 방향으로 보여주면서요.

'신이시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 - 합스부르크의 상징 쌍두독수리를 닮은 무대

사실 헝가리 독립과 관련된 언급은 헝판에선 상당히 초반에 나왔습니다. 요제프가 처음 나오는 '신이시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에서요. 독어판과 라센에선 자유를 외치다 끌려갔다는 죄수의 어머니가 '어느 어머니'라고만 애매모호하게만 언급됩니다. 하지만 헝가리판에선 정확히 '헝가리 귀족의 어머니입니다' 라고 소개됩니다. 자국의 독립을 외치다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냉정히 황실의 규범을 따르라는 조피에 의해 무산되고 맙니다.


이 장면은 1848년 헝가리 혁명을 연상시키면서 믿거나 말거나, 헝가리 백작부인이 요제프에게 내린 저주 때문이라는 카더라 풍문과 연관있습니다. 헝가리 독립 혁명에 참여했다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형수의 어머니가 그에게 저주를 내뱉었다고 했던 썰이 전해져오거든요. 근데 이게...서프라이즈에서도 언급되었네요. 대체 왜..?

아라드의 13명 순교자 The 13 Martyrs of Arad - 1848 혁명 이후 사형당한 반란군 장군들


헝가리판에선 이 일을 어느 헝가리인의 어머니라고 콕 찝어 언급한 이유는 1848년 혁명이 헝가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요제프가 젊었던 시절 일어났던 독립전쟁이자 오스트리아의 패배 이후 제국의 붕괴까지 이어질 뻔 했던 사건이거든요. 러시아의 도움으로 겨우 격파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워질 때까지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놓였습니다. 이 때 당시 참여했던 인물들이 합스부르크 황가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건 헝가리인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
물론 루케니가 이 당시 배경은 1853년이라고 언급했고, 혁명 주동자로 잡힌 사람들은 1849년에 죽었으나 누가 뮤지컬에 역사고증을 기대합니까.

이런 대사를 통해 자국의 자유가 억압받았던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나, 오스트리아에선 자세히 밝혀봤자 좋은 일은 아니니. 어느 어머니라고 애매모호하게 처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역알못의 뇌피셜이라 적당히 서프라이즈 썰 정도의 신빙성이라고 보기)


'데브레첸'에 등장하는 헝가리 3귀족. 좌측부터 안드라시, 카롤리, 바티야니


이 때 처형당한 사형수는 '혼란한 시절들' 이후 재언급됩니다. 정치적 순방을 위해 요제프와 함께 방문한 헝가리의 도시 데브레첸에서 등장하는 헝가리의 세 귀족들의 역사적 발언을 통해서요.

바티야니 :
저는 황제를 도무지 환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제 아버지를 처형했어요
단지 헝가리인들의 자유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께서 그토록 자비를 구하셨는데...!

카롤리: 그렇다면 황후를 환영하게나. 황후는 우리의 편이니까

안드라시 :
시어머니가 황후의 자유를 박탈했다지. 우리처럼 말이야.
그녀는 황제를 설득할 수 있어. 헝가리가 독립하도록!

바티야니 :
알겠습니다. 그녀와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황후는 헝가리어를 공부했다죠. 자식들과 헝가리어로만 대화한다고 합니다.

헝가리버전에서만 추가된 발언을 통해 초반에 사형당한 이가 헝가리인 귀족 바티야니의 아버지, 탄원하던 어머니는 그의 할머니라고 언급됩니다. 그래서 당시 합스부르크 황가에 적대적이었던 귀족들의 분위기도 함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엘리에서 등장하는 헝가리 3귀족들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동명이인들이 많아서 이 분들이 맞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바티야니 Batthyány Elemér
-> 헝가리 혁명 때 사형당한 헝가리 초대 총리의 아들. 요제프에게 원한 있을 만 했네... 승마 스포츠의 선구자였다고.

카롤리 Károlyi István(1797-1881) : 정치가. 학자. 헝가리 독립전쟁에 참여했다가 수감되었다 풀려남.
-> 독어판에선 'Stephan Károly'라고 써졌는데, 성 슈테판에서 따온 이름이라 헝가리에선 이슈트반으로 표기됨. 어쩐지 검색해도 안나오더라. 이걸 왜 알게 되었냐면 헝가리 건국왕 이름이 이슈트반이었고 부다페에서 올렸던 개노잼 개띵곡 헝가리 창작역사뮤 잠깐 파느라... 이분은 더 라스트 키스에도 나왔던 듯.

안드라시 Andrássy Gyula(1823 ~ 1890) :
헝가리의 정치가이자 총리. 외무장관. 보수적인 인물이었음. 씨씨와 사귀었다는 근거없는 풍문도 있고.


혁명 주동자들은 모두 사형당했던 강경 진압 때문에 황실을 좋게 보진 않았던 귀족들이었으나, 조피 대공비와 달리 황실에 새로 들어온 황후가 헝가리인들을 지지하자 어쩌면 그녀를 통해 헝가리의 독립을 다시 쟁취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황후에 대해 긍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하죠. 귀족들의 우호적인 분위기는 엘리자벳의 큰 딸의 죽음 이후 나오는 '행복한 종말'에서 지식인들의 목소리로도 퍼집니다.


'행복한 종말' 빈의 카페지만 빈 시민들과 헝가리 시민들이 함께 섞임. 코어힘 부럽다


루케니가 알바하다 말고 선동하고. 따분함에 지쳐 뭔 일이라도 일어나라고 외치는 빈의 지식인들이 등장하는 것까진 동일하나, 헝가리 연출에서는 두 분류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같은 대사 안에 서로 다른 속내를 내비칩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종말을 기다린다며 권태에 찌든 목소리라면 헝가리 사람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나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하거든요. 대충 이런 뉘앙스로요.


빈 사람들 : 우린 지루하니 뭐라도 일어나길 기다린다
헝가리 사람들 : 우린 성장하고 멈추지 않고 기다린다
단체 : 하지만 그전까진, 커피나 마시면서 기다려야겠지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나라의 시민들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흥미로운 대사가 생겨납니다. 빈 사람들은 신문을 보고 엘리자벳을 자유주의자래? 급진주의자야? 라며 그녀를 가십거리로만 소비하는데, 이후 나타나는 대사가 다릅니다.

'정말 괴상한 여자야'라는 대사 대신 헝가리인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자리에 일어나서 '황후는 헝가리의 편이야' 라고 화를 내며 옹호하거든요. 빈이라는 공간이니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다수인데 헝가리인들도 함께 섞여 묘하게 같은 얘기를 다른 기대로 품고 엇갈리도록 말하는 것이 보입니다. 더라키 헝판 수록곡에만 있던 '더 나은 삶'(링크)도 생각나고요.
이후 루돌프가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는 얘기는 다른 라이센스와 동일하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전주 장면. 뒤에 저건 심령사진 아닙니다 죽음입니다

한동안 루돌프 얘기는 나오지 않다가, 2막 중간 '그림자는 길어지고'에서 등장합니다. (헝판은 루돌프와 요제프의 대화장면인 '루돌프 나는 정말 화났다.'가 없음) 이 때 루돌프가 들고 있는 하얀 건 당구공 입니다. 2막 초반 꼬마 루돌프 때 죽음이 꼬시려고 줬죠. 거 애가 고양이도 아니고.

'그녀냐, 우리냐' 체스판 대신 당구대 연출로 바뀜

당구공을 준 이유는 아마 꼬마 루돌프 등장 다음 곡이었던 '그녀냐, 우리냐'에서 등장하는 조피를 비롯한 귀족들이 들고 있는 큐대와 이어지는 연출이 아닐까 싶습니다. 헝가리판에선 체스판 연출 대신 공동의 적 엘리자벳을 타도하고자 당구대 위에서 마치 지휘봉처럼 큐대를 흔듭니다.

그래서 치이는 대로 움직이던 당구공 대신 권력을 잡아라, 그런 의미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음모와 권력다툼으로 인해 끝까지 치이는 인생이었던 루돌프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었나 추측됩니다.


'그림자는 길어지고'는 루돌프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굴리는 연출 빼면 독어판에 비해 가사가 상대적으로 달라진 부분도 없어서, 뭐...크게 소개할 건.... 아 맞아. 마지막에 죽음이 루돌프에게 주는 칼은 요제프가 헝가리 왕국의 왕이 되는 대관식 때 받았던 칼입니다. 대관식의 칼을 황제의 아들에게 건네면서 권력을 받으라고 대놓고 꼬시는 거.

'음모'의 무대장면. 우측의 인물 역시 심령사진 아닙니다


그 장면 이후 죽음의 유도 아래 루돌프는 헝가리귀족들에게 향합니다. 이 장면의 연출은 위에 언급한 1848년 헝가리 혁명을 의도한 게 아닌가 싶어요. 헝가리의 귀족들이 모이고, 무대의 배경은 당시 혁명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음모' 루돌프 너 뒤통수 칠 생각 하는 중

헝가리 귀족들은 루돌프의 지지를 환영하면서도 쟤가 왜때문에 왔대? 동기를 의심하며 루돌프를 완전히 믿진 않습니다. 부패하는 세계의 끝에선 영웅이 필요하나, 루돌프를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카드패처럼 얘기합니다.

헝가리 귀족들은 2막 초반 '이옌'에서 루케니가 언급한 것처럼 합스부르크라는 카드 성이 무너질 것이며, 전쟁(아마 1차 대전)이 다가오는데 황제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지켜만 볼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1차 대전 발발 직전 거의 은퇴한 거나 다름 없었던 고령의 요제프를 생각하면 맞는 추측이긴 하죠.
어쨌거나 그들은 루돌프를 왕좌에 앉히면 몇 년 뒤에 몰아낼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냅니다, 만일 일이 실패해도 황태자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며 하찮은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 역사상 루돌프가 크게 한 것도 없어서 이 평가는 나름 정확했고....

그리고 헝가리 귀족들이 서 있던 회전무대가 돌아가고 그 자리에 오스트리아의 장관들과 죽음의 천사들, 요제프가 등장하면서 이 장면은 더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이중성을 강조합니다.




추가로 헝가리판에는 라센 미수록곡인 증오(hass)가 등장합니다. 2차대전까지 언급하며 너무 역사에 깊게 들어가서 대부분 이 곡을 빼는 추세이나 헝가리가 루돌프 까는 기회를 놓칠 수 없죠. 독어판에선 요제프와 루돌프의 논쟁 중 아버지가 제국에 가져오는 건 증오라는 루돌프의 고함에서 곡이 시작되는 반면, 헝가리판에선 루돌프가 배신당했던 '음모'와 '당신처럼rep'이후 곡이 시작됩니다.

독일어 버전에선 2차대전의 나치를 연상시키는 군인들의 행렬과 반유태주의가 언급되지만 헝가리 버전은 나치보다는 일반 민중들이 지녔던 타 민족을 향한 적개심을 보여줍니다. 루케니가 준 책들을 연료삼아 드럼통에 불태우면서...그래 이상하게 엘리에선 불나오는 장면이 적더니.... 시위대는 이렇게 말합니다.

독일 깃발을 든 시위대
우리와 같지 않은 자들은 모두 잘못되었다.
우리에겐 총통이 필요하다
모두 죽여야 한다!

어우 험악해라. 그런데 헝가리에선 총통(=히틀러의 관직이었던 Führer)와 Sieg heil을 독어 원문으로 발음했네요. 이건 몰랐는데. 여튼 시위대들은 루돌프가 유태인에게 호의적이라고 증오의 화살을 그에게 돌립니다. 루돌프가 황실을 배신했던 결과가 민족주의를 부추겨 민족간 증오(특히 독일)를 부추긴 것처럼요.

더라키에 이어 엘리에서도 루돌프를 맡아 사방팔방 굴려지는 중

헝가리판에만 볼 수 있는 연출에선, HASS 마지막에 시위대들의 나치식 인사 이후 루돌프가 뛰쳐나오면서 안 돼, 절규를 지르며 난입합니다. 그리고 주저앉아 시위대의 증오와 마주합니다.
독일의 시위자들은 퇴장하면서 유대인의 종, 헝가리인들의 친구, 자유주의자 쓰레기. 빌어먹을 공화주의 지지자, 자기들 사상과 다르다고 못된 말을 하다가 마지막 말이 Házasságtörő! 그러니까 간통자..... 아니 이건 진짜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슬쩍 사실 끼워놓고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말 때문에 앞의 모든 비난이 휘발되네요.
어휴 매콤해라. 헝가리에선 루돌프를 안좋아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마음에 듦)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


이후 장면은 원작과 동일하게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으로 넘어간 뒤 죽음과 춤을 추다 극단적 선택을 '마이얼링'이 나옵니다. 이렇게 2막에서는 루돌프의 서사는 하스와 다른 곡들의 순서를 바꾸면서 매끄러운 역사서술로 이어집니다.

당신이 헝가리의 옥택연입니까

그런데 왜 극단적 연출까지 하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 죽음의 왈츠에서 마리 베체라가 나오는 건 그렇다쳐도....왜 셔츠까지 시원하게 찢는 걸까요. 아 심지어 제일 처음에 굴렸던 당구공처럼 죽은 루돌프를 죽음이 아래를 향해 굴려버리네요. 진짜 못됐다.

하지만 이미 헝가리 연출에 단련된 사람이라면 저 루돌프 본체가 무대 위에서 빤쓰만 입은 걸 본 적이 한 두 번도 아니니 코나 후빕니다. 모촤에선 다 벗는 거까지 봤는데 뭐...

이런 루돌프의 스토리를 통해 루돌프의 입장에선 충동적인 결정이었을 수 있어도, 당시 헝가리의 귀족들은 자국의 독립을 아주 오랜기간 준비해왔고 절실해왔음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3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헝가리에서 올린 엘리자벳은 본인들의 역사적 입장을 추가해서 각색했다.
2. 엘리자벳의 자유보다 자아와 정체성을 강조했다.
3. 얘네 루돌프 안좋아하는 거 같은디



루케니랑 다른 인물들 얘기도 더 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주체가 안되네요.
이건 시간 날 때 다음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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