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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뮤지컬

별을 향한 세기말 낭만, 헝가리 창작 뮤지컬 '다락방A padlás' 소개

by 헝뮤아카이브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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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마다 부다페 떡밥 다 디졌네, 헝뮤 탈덕했네 외치면서 딴 거 덕질하는 시즌에.. 늘 예상치 못한 작품을 파고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젠 심지어  유튜브 댓글로 영업당함. 그래서 오랜만에 번역공장 돌리면서 헝가리 창작 뮤지컬인 '다락방 '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 어느 헝가리인이 유튜브에다 '님 padlás 번역안함?' 댓글을 남겼길래 뭐야 그건 찾아봤거든요. 

 

 


당시에 봤던 썸네일이 이거였음. 뭐야 얼굴에 흰칠만 하면 다 좋아하는 줄 알어(맞음) 이거 아동뮤아녀? 그걸 왜 여기서 찾아... 아마 자기네 건국사 뮤지컬 이슈트반도 올려대는 광인이라 추천한 거겠지.

바이올린 잘쓰는구먼 그치만 취향 아님 코후볐는데요. 몇 주 전 자막공장 공장장님이 이게 뭐셔 찾아봤다가 

공장장님 : 님 이거 전연령가이긴 한데 아동뮤 아닌 듯 
나 : 뭔소리여 이거 유령이랑 공돌이너드랑 슈퍼컴퓨터 나오는 뮤잖어 뭔데 대체 게다가 노래 취향 아니라구욧
공장장님 : 80년대 후반 공산주의 끝자락에 낭만을 찾는 얘기같은디
나 : 두근 

 

1988 초연 공연사진


헝가리의 공산정권이 1989년에 끝났는데 이 극은 1988년도 1월에 올라와서... 정말 20세기 세기말을 배경으로 둔 극입니다. 저 흰칠 분장 연출은 30년 넘게 올려대다보니.. 뭐 새로운 거 없나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오페라계처럼 좀 맛간 요소가 추가된 사도같은 버전이고. 나름 멀끔한 탈 쓴 뮤지컬임.
그런데도 최근까지 올라오며 꾸준히 사랑받는 건 이런 세기말적의 요소 속에 담긴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해서라고 생각해요. 공산주의의 끝자락 + 80년대말 그시대의 락 + 전연령뮤지컬 + 본격sf보단 공상과학에 가까운 세기말 요소가 섞여져서 정말 묘한 뮤지컬이 탄생했거든요. 

영-돌하이도 불렀다! 다락방 넘버!


80년대 제작된 헝가리 창작뮤지컬로는 '이슈트반 키라이'도 있습니다만, 그건...국뽕용 프로파간다에 가깝고... 전연령가를 아우르는 대중타겟 국민뮤지컬은 '다락방'이 더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찾아보니 좀 유명하다 싶은 뮤배나 가수들은 이 극 넘버 하나쯤은 불렀고. 게다가 80년대부터 꾸준히 여러 극장에서 다양한 연출로 올라오고 있고요. 


크리스마스캐럴 처럼 과거(동화 속 유령들) - 현재(두 연인) - 미래(슈퍼컴퓨터)가 다락방이라는 공간에서 시공간을 넘는 낭만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아이는 아이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생각거리를 주는 극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 극이 뭔 스토리냐냐고 묻는다면... 자국민 아닌 사람이면 이 뮤지컬 대체 뭔 내용이야(그치만 메시지는 좋네!) 다들 외치고 있음. 
- 뭐야 다락방 침입한 도둑이 죽고 나서 사신이 그 몸에 들어와? 얄짤없네
- 뭐야 메인빌런은 할머니 모독죄로 잡혀가?
역시나 공산정권! 헝가리 모권이 강했다는 게 진짜였어 이러고 있어서.. 

 

 

근데 유튜브에 80년대 초연 영상 있길래 좀 봤는데

헝뮤에서 불쇼와 오토바이쇼는 봤어도 공중부양 입장은 처음봐서 경악함.
빡세다 공산정권 마지막 해에 올라갔던 뮤지컬

 

 


다락방에 머무르는 유령들- 왕자, 처형집행인, 꼬마, 난쟁이는 모두 동화 속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인물들입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키스로 깨우는 대신 노래로 공주를 깨우려 했던 낭만주의자 왕자, 백설공주에서 보초를 서느라 잊혀진 회의주의자 난쟁이(차별적인 용어라 뮤에선 람파스(랜턴)이라 부르는 듯),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지적했다가 사형당한 꼬마 , 그리고 그 소년의 사형을 막으려다 함께 사형당한 청각장애 사형집행인. 이렇게 4명의 유령들이 등장합니다.

여담으로 꼬마 역엔 대부분 소프라노 음역대의 여성배우가 담당하는데요. 다들 꾀꼬리 같은 하이톤 음역대라 뭐야 오페레타 겸업하는 분들인가 당황함.

 

 

 

 

오래된 아파트 건물 위 지그재그 모양의 다락방. 아래에는 끼익끼익 소리나는 철제 프레임의 들어올리는 문이 있다. 천장에 낸 채광창은 열려있다. 창문이 몇 개 있다. 공간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컴퓨터가 벌려져 있다. 다락방 옆에는 다른 다락방으로의 연결 통로가 있지만 "교두보"는 닫혀있고, 모서리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출입금지! 위험!
더 나아가, 거기, 다리를 따라가다보면, 다락방의 창문을 볼 수 있다. 추시계는 시계 바늘이 없다: 잡동사니들과 폐기물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방의 나무문은 열려있다. 위에, 지붕 위, 티비 안테나, 굴뚝, 사다리와 널빤지 그리고 굴뚝재가 있다. 가장 높은 하늘에는, 밤하늘의 별들이 있다.

 

무대의 서로 다른 측면(아마도 극장)에서 유령들이 나타난다- 난쟁이(=람파스)는 광산 램프를 들고 있고, 왕자는 마술책을 들고 있으며, 사형집행은 근육질의 몸으로 걸음을 내딛고, 꼬마는 경탄하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변을 살피고 있다.

 

꼬마: 나 여기있어.
왕자: 나 여기있어
꼬마: 나 여기있어.
람파스: 어떻게 알라는 거야, 어디에 있는지.
꼬마: 아이쿠, 아이쿠 낯선 곳이네, 우리 이곳은 처음이지.
왕자: 벌써부터 좋은 예감이 드네.
꼬마: 조심해!
람파스: 오래된 다락방이야, 그냥 수많은 다른 것들처럼, 끔찍한 먼지덩어리가 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꼬마: 얏호!
왕자: 이 다락방은 좋은 다락방이야!
람파스: 낡아빠지고 삭막하다고!
왕자: 그렇지만 하늘이 다르잖아!
람파스:  희미한 별들 뿐이야!
왕자: 보이는대로 판단하지 마.
람파스:  오- 오-
처형인: 오- 오-
왕자: 오- 포기하지 마, 우리는 공간이 필요해
꼬마: 오
왕자: 오- 그래도 찾아야만 해, 공간이 필요해, 공간이 필요하기에, 공간이 필요하기에, 모든 유령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
꼬마: 공간이 필요하기에, 모든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곳이
람파스:  공간이 필요하기에, 별들이 꺼려하지 않는 곳이, 공간이 필요하기에, 우리의 기억이 계속 살아갈 곳이
왕자: 왜냐하면 공간이 필요하기에
꼬마: 매혹적인, 우리가 속해있을, 공간이 필요하기에,
람파스:  우리는 어디에서 때때로 잠들 수 있을까. 

 

 

 

회의주의자 람파스와 낭만주의자 왕자라니 낯설다 이 조합. 선입견 가지고 인투더우즈처럼 아고니~~! 하던 왕자같은 성격인 줄. 근데 번역공장 공장장님 왈 헝뮤덕질하며 이렇게 말투 다정한 인물은 처음 본다고 놀라는 중. 디어 람파스.. 넌 어떻게 생각해? 이런 뉘앙스로 말한다는데 낯설다 비-부다페..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1500년대 중세였고 매번 희망을 가졌으나 지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지구를 떠나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별로 떠나고 싶어하고요. 대사 중 '우리에게 삶은 완결된 낭만이다.'라고 하는데 그들이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별로 떠나고 싶은 이유도 '우리를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구에 더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뭐야 슬프잖아 갑자기 눈물흘리는 사람 됨

 

 

 

1광년이라는 거리
그저 바라봐, 그저 지켜봐
울려퍼지는 빛의 땅
일생의 기적을 보기 위하여

나는 그 순수함을 보지만 이해하지는 못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닿을 수는 없어
저기엔 바다가 있고
여기엔 내 배가 있네

이곳에서 지내야 해
이곳에서 꿈꿔야 해

 

이건 뮤지컬 중 가장 유명한 곡인 '1광년의 거리 ' 번역영상. 우주로 떠나는 유령친구들을 향한 송별가로, 본인도 떠나고 싶으나 남는 걸 선택하는 세기말 낭만...묘하게 스타니스와프 렘처럼 동유럽권 SF소설도 생각나고요. 당연함 둘 다 동유럽권임. 

이 노래는 30주년 공연에서 주인공 맡은 배우가 콘서트 영상이 제일 취향이더라고요. 어쿠스틱한 노래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 그런가. 옆에 갑자기 등장하는 코러스는 작곡가임. 우우 뭐예요 노래 집중하게 해줘요
 


이 극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가, 최근 낭만과 이상향에 대한 얘기는 동시대가 아닌 19~20세기 초를 배경으로 많이들 다루거든요. 하지만 '다락방'은 80년대 말에 나올 때 그당시 현재의 이상과 낭만을 얘기하니 진심처럼 보이는 이유도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낭만은 문명과 과거의 화합을 얘기하면서 몇십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지고요. 

 


그리고 프롤로그-에필로그도 연출 좋았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놀이책을 펼쳤다 접혔다 하며 동화 읽는 것처럼 이야기를 읽거든요. 프롤로그에선 유령들 본인들의 얘기를 하다가 현재의 인물들 -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너드, 옆집에 사는 바이올린 연주자, 손주를 바라는 할머니, 그리고 슈퍼컴퓨터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별로 떠나는 방법을 찾게 되고, 에필로그에서 현재의 인물들의 행복을 얘기하면서 이야기가 순환구조로 이어집니다. 가족이 생기고 이별하고 죽고 태어나고 또다른 가족이 생기고 끝없는 이야기로요.



하기야 아이들 데리고 헝롬쥴이랑 레베카 보러 안데려가지..

크리스마스 캐롤에 유령제령 누군가의 비뚤어진 취향 자극하는 불태우기쇼없어도 좋은 메시지 줄 수 있지..

헝가리엔 죄다 굴라쉬맛인 줄 알았는데 죄송해요 반성 중. 요새 너무 자극적인 것만 먹어서 이런 것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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