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헝가리 뮤지컬

뮤지컬 <모차르트!> 줄거리와 시대배경으로 보는 영화 아마데우스와 아마데

by 헝뮤아카이브 2023. 2. 12.
728x90


지난 글에 이어서. 뮤지컬 <모차르트!> 줄거리, 분석, 캐해석 기타등등 검색어에 걸리게 만들어서 은근슬쩍 헝가리판 얘기하겠다는 야망으로 시작된 글.

이전에 적었던 것처럼, 헝가리에서 올린 <모차르트!>는 부다페스트 오페레타 극장에서 올린 쿤체의 뮤지컬 중 연출과 해석을 포함해서 가장 많이 변형되어 올라왔습니다. 독어판과 헝가리판은 아예 다른 주제 다른 내용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이렇게 바꾸게 된 배경이.. 오스트리아에서 올렸던 엘리&모촤 초연은 실존인물에 관한 고정관념을 냉소적으로 봤던 시선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부다페 입장에선,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배경이었던 <엘리자벳>은 본인들 역사니까 독립사 한 스푼, 민족의식 콸콸콸 쏟아부어도 괜찮았습니다. 근데 18세기인 <모차르트!>의 경우엔 진짜 옆나라 역사라서. 역사적 인물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보다는 다른 방향성으로 틀어야 했어요. 그게 모차르트란 인물에 집중하면서, 볼프강과 아마데가 공생 관계처럼 나온 이유고요. 곡 순서도 많이 바뀌었어요. 심지어 헝판에선 내운피가 1막 중반에 벌써 나옴. 개인적으론 부다페가 올린 쿤체극 중 모촤가 제일 캐해석 흥미롭게 한 듯.

그런데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헝모촤가 이렇대요! 하려면 부다페가 대체 뭘 고쳤는지 원본인 빈판 텍스트부터 소개해야 되네. 빈판은 잘 모르는데 큰일남. 게다가 실존인물 모촤에도 관심 없어서. 걔가 쓴 오페라만 좋아하는데. 시작 전부터 망함. 어떻게든 영업해보겠다고 헝모촤에선 모차르트 스트립쇼가 나옵니다! 자극적인 연출로만 찌라시 퍼트렸던 업보지 이게.
하지만 벗는 건 구라 아니고 진짜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쭉 읽어주세요!


그래서 이번에도 부족한 배경지식을 끌어오겠다고 이전에 언급한 모촤~엘리 메모리머신으로서의 뮤지컬도 함께 참조했습니다. 저자가 모촤! 얘기하면서 부다페 얘기도 많이 해줘서 내적 호감도 상승함.

이번에도 길어질 것 같은데. 이번 글에선 모촤! 이전에 나왔던 <아마데우스>와 엮어서 얘기해보려고요. 인간 모차르트와 대적하는 아마데(헝판ver) 소개와 달라진 엔딩도 같이 적으면서.




1. 오스트리아 역사적 인물의 기억 연구 : 18~19세기를 중심으로.

여기는 논문의 연구 주제가 흥미로워서 내용 발췌 겸 정리하는 내용.
기억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오스트리아는 80년대까지 20세기의 과거, 특히 나치와 제3제국 때의 언급과 논쟁은 피하려고 했었음. 90년대 와서야 20세기 초의 역사를 다뤄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쿤체는 초기 뮤지컬에서 18~19세기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20세기의 역사를 함께 담고자 했음. 여기서부터 오페레타 흥한 이유랑 엮여지니 흥미롭다! 안그래도 부다페 요새 계속 오페레타만 올려서 피눈물 흘리고 있는데!
근데 모차르트랑 크게 상관없는 내용이라 관심없으면 아래로 내려도 될 듯.

오스트리아 배경의 50~60년대 영화


유럽권에선 80년대 후반에서야 20세기의 논의가 공론화됨. 엘리와 모차는 90년대 이런 시대의 흐름을 타서 제작된 거고. 이전 글에서 언급한 50년대 씨씨 3부작... 제작진들 대부분 오! 그 끔찍할 정도로 노잼인 영화! 라고 평했던 그거. 영화에서 달콤하고 순진한 분위기를 내포한 이유는 당시 역사적 상황 때문이었음. 50~60년대엔 목가적인 비전을 보여주며 2차대전을 잊기 위한 향토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그당시 트렌드였음.

2차 대전 이전 유럽의 평화롭고 행복한 공존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으나, 누군가는 이러한 과거 잊기 시도가 실패했고, 명랑한 영화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잃어버렸던 시간에 대한 우울함을 불러일으켰다는 듯. 저자는 <오클라호마>랑 <사운드오브 뮤직>도 같이 언급했는데. 이건 2차 대전 이후의 미국과 유럽관계에 관한 정체성과 기억을 위한 영화였다고. 좋았던 옛날이여! 인간의 순수함과 선의를 극대화하면서 국민들의 공동책임에 관한 집단기억을 잊게끔 의도하는 형식이었다고 평함. 마치 나라는 나쁘지만 국민은 죄가 없어! 저항의 부족을 정당화 하는 게... 아 잠깐 콘솔겜덕 열 뻗치게 만들었던 무수한 게임 스토리 생각나서 잠깐 진정하고...
여튼 전후에 비엔나 왈츠와 오페레타 등 가벼운 음악이 퍼지게 된 것도 이런 이유도 있고. 그래서 오스트리아 클래식음악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의 전기를 재해석한 <모차르트!>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임.




50년대 씨씨 3부작의 고정관념에 대항해서 만든 게 <엘리자벳>이었다면, <모차르트!>는 피터 셰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80년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음. 영화 아마데우스는 사람들이 알고 있던 모차르트의 전기를 보편화한데다가, 아마데우스만큼 모차르트에 대한 미디어가 흥한 것도 없었고.
쿤체는 John Rosselli의 <The Life of Mozart>의 역사서를 베이스로 삼은 듯 하지만, 늘 그랬듯이 뮤지컬은 역사적인 영웅의 전기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역사서술로 보는 건 원치 않아하니. 걍 참고삼아서 보면 좋을 듯.



영화 아마데우스


영화를 본 사람들의 기억에선 모차르트는 경박한 천재로 기억됨. 왜냐하면 나레이터이자 그의 라이벌처럼 나오는 살리에리의 기억을 통해 모차르트란 인물을 보여주기 때문임. 눈을 가리고 연주한다던가, 음탕한 말장난에도 불구하고 장엄한 오케스트라곡을 작곡하는 모차르트는 아폴론적 요소와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동시에 가진 개인의 충돌...너무 전문적으로 파고들긴 귀찮다 패쓰!!
여튼 살리에리를 통해 모차르트라는 인물의 분열 - 저속한 망나니에 대한 경멸&신성한 천재를 향한 찬사를 동시에 보여줌. 그리고 쉐퍼가 다루는 모차르트는 지금까지 논의되는 종교적, 철학적 갈등을 극대화시켰고.

이 날을 위해 지금껏 스쳐 지나가는 혁명 장면들을 번역했다!


그러나 쿤체의 뮤지컬에선 시대상 빠트릴 수 없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면서 과거와의 연결을 구축하려고 함. 그게 엘리자벳에선 'HASS (증오)'였고.
<모차르트!>에선 2막의 '사람답게 사는 것'(헝판에선 1막에 '폭동'으로 추가됨)으로 프랑스 혁명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끼친 여파를 보여주려고 함. 헝가리판에선 파리로 간 모차르트가 프랑스 혁명을 겪으면서 자유주의의 사상에 눈을 떴다는 걸 함께 보여주고.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자기파괴적인 행동과 분열을 살리에리를 통해 보여줬다면, <모차르트!>에선 볼프강의 어린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마데를 통해 모차르트란 인물을 거울상처럼 제시함. 아마데우스처럼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헝가리에선 아마데의 첫 등장이 볼프강이 거울을 볼 때 처음 등장하고, 극 중 내내 서로 같은 행동을 반복함. 이 거울 메타포는 극 중 꾸준히 등장함.





2. 그리스 비극으로 보는 인간 볼프강


가사는 헝판이라네


뮤지컬 <모차르트!>에선 한 명의 예술가이자 인간으로 살기 위한 볼프강과 대립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음. 아버지 레오폴트, 콜로레도 대주교, 콘스탄체와 그의 가족,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살리에리(헝판 한정 더 등장함), 동업자 쉬카네더, 그리고 내부의 자아 아마데. 빈에서 모차르트 거열식 열리고 있는 듯.


쿤체의 기존 극들은 그리스 비극에서 영감을 얻고 있음. 쿤체 왈, '본인 극에서는 역사가 전부며, 음악은 역사를 위한 것이고 춤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그저 뛰어다니는 것' 이라 했으니. 그걸 위해 스토리 전달 기술을 철저히 연구했다고. 그래서 베토벤 초안은 대체 어떻게 썼던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요 대체.
여튼 독뮤 초창기엔 뮤지컬은 오락으로 여기는 시선이 강해서, 이걸 깨부수기 위해 신경썼다고.



이건 15년 빈판 사진이라네

인간 볼프강은 18세기의 음악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18세기 봉건사회에 저항하며 독립된 개체로서의 열망을 끊임없이 내보임. <모차르트!>에 묘사되는 볼프강은 그리스 신화처럼 예외적인 개인이자 동시에 대중에 의해 신화화된 인물임.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연민과 두려움을 동시에 일으킴. 모차르트가 보이는 행동들은 운명에 대적하려는 오만함과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비극영웅의 서사를 따르고 있으니까.
(무대에 신이 존재하진 않으나) 그리스 비극처럼 볼프강은 자신이 인간 이상의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존심, 이기심, 사회규칙에 대한 반항심을 가짐. 그러나 이런 오만이 본인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가족, 공동체에 처벌이 내려진다는 현실과 마주하고, 고독 속에서 홀로 운명과의 싸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됨.




순서대로 초연빈판 - 15빈판


전작에서 엘리자베트가 시대에 너무 이르게 태어난 선구자처럼 표현된 것처럼, 모차르트는 본인이 속한 시대를 향한 비웃음을 아 귀족 조까쇼ㅇㅇ하는 형태로 보여줌. 예로 프라터 공원은 극 중 귀족계급사회에서 분리되어 시민들을 대표하는 장소처럼 나옴. 그래서 콜로레도가 pc방 놀러나간 애 잡는 부모마냥 프라터는 안 돼! 당장 애 데려와!!! 했던 것도 그런 이유고. 사실 좀 보다보면 콜로는 모차를 마음으로 낳고 통장으로 기른 아빠가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함.

볼프강이 시민들과 아르코 앞에서 일렉 기타를 들고, 록스타처럼 행동하는 것도 '똥묻은 돼지꼬리(15년 이후엔 신이 선택한 남자)'를 통해 자신은 시대를 앞선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오만함(=자신은 귀족들보다 더 뛰어나다)을 보여주기 위함임. 이건 어디서 본 건지 모르겠는데.. 초연~헝판의 제목이 똥묻은 돼지꼬리인 건.... 18세기를 '돼지꼬리의 시대'라고 불렀고, 모차르트가 편지에서 썼던 말장난을 인용하면서 ㅇㅇ18세기 엿먹어라 하는 곡처럼 나온 것 같음. 이건 어디서 읽었는지 출처가 좀 가물해서. 뇌피셜인 듯?

그러나 볼프강의 이런 오만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진짜 본인 재능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임. 하늘이 내려준 천재라는 지위는 부모 잘 만났을 뿐인 귀족보다 더 잘났다는 식으로 보여주면서.



99년 초연 - 붉은 코트 Der rote Rock
15빈판 - 기적은 끝났어 Die Wunder sind vor&amp;amp;amp;amp;amp;amp;amp;uuml;ber


아마 초연빈판과 15빈판에 볼프강이 처음 부르는 곡이 달라진 것도 이런 장면을 더 강조하려고 바뀐 것 같은데. 초연에선 어렸을 적 황후에게 받았던 붉은 코트를 다시 입고서 본인을 귀족과 동등한 지위로 올려놓지만, 15년 빈판에선 귀족들이 좋아하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콜로레도 산하의 신하들과 주사위놀이나 하고 자빠졌음. 곡 제목도 기적의 아이는 사라졌다는 것처럼 '기적은 끝났어 Die Wunder sind vorüber'로 바뀌었고.

귀족에게 경탄받던 신동은 이제 그들과 함께 세속의 돈내기나 하는 존재가 됨. 주사위에서 이겼지만 볼프강은 돈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아르코와 아버지에게 언제 철들 거냐며 쌍으로 잔소리를 들음. 그러면서 레오폴트는 머리를 숙이고 사회규범에 적응하라 질책하나, 볼프강은 내가 곧 음악이라고 선언함. 우리(=아마데와 자신)는 원하는 걸 할 것이고, 내 천재성은 독립을 원하며, 이건 하늘이 내게 보낸 힘이다고 하면서. 평범한 이들이 적용되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며, 본인은 귀족보다 더 초월적인 존재라고 말함.


그러나 이런 자신감은 콜로레도의 충돌과,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면서 점점 길을 잃게 됨. 그리고 1막 피날레 직전에 콜로레도에게 해고당하면서 자신이 귀족사회라는 외부압력에 독립해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최종보스는 본인의 운명(=아마데)이라는 걸 알게 됨.
자립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에도, 볼프강은 자신의 천재성이자 예술가로서의 운명을 상징하는 아마데에게선 독립할 순 없음. 18세기의 사회규범에 벗어나 볼프강이 원하는 평범한 사람처럼 살기 위해선 초인적인 능력없이는 불가능하니까.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이러한 운명(=아마데)에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예견으로 1막이 끝남.
2막에선 자아실현의 욕망도 있을 성취하려면서도 시대에 수용되고픈 갈망으로 인해 계속 부모와 누나, 아내, 빈의 친구들과 애착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고.

쿤체 뮤의 주인공들은 그들과 대립하는 유령들의 모습이 꾸준히 마주함. <레베카>에선 레베카 그 자체(헝판에선 정체모를 물가의 망령들의 모습으로 등장함), <마리 앙투아네트>에선 운명의 쌍둥이 마그리트, <뱀파이어의 춤>에선 크롤록 자체가 유령이고.
<엘리자벳>에서 죽음의 역할이 <모차르트!>에선 아마데로 이어짐. 볼프강은 자신의 유년기라는 상징적인 모습을 한 유령과 대척하게 됨.

15빈판 - 모차르트의 죽음


2막에선 그가 지닌 음악적 재능은 인간 볼프강에게 축복이자 저주란 걸 계속 보여줌. 볼프강에게 예술에 전념하는 것은 곧 죽음으로 향하는 길임. 초반에 그의 재능은 신이 준거라고 자랑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그는 포기하고 가장 중요한 것들(가족, 사랑, 삶)을 내어줘야 함. 15년 빈판에서 모차르트의 죽음은 '모차르트! 모차르트!' 이후라서 퇴장안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트로이투스(입당성가)가 흘러나오며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함.


난 내 모든 걸 너에게 줬어.
내가 가진 걸 다 널 위해 바쳤다고.
내 유년, 내 청춘, 우리 누나, 아버지, 친구들, 사랑과 보금자리…
내가 원했던 건….

독판 번역 출처는 여기(http://heilt.egloos.com/4291200).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볼프강은 아마데를 향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줬다고 비난하나, 아마데는 그의 삶 마지막까지 쥐어짜내려 펜으로 심장을 찌름. 결국 음악이라는 운명에 굴복당한 볼프강은 홀로 죽게 됨.


그런데..... 헝판에선 좀 많이 다름.... 몹시 다름.... 죽기 직전, 볼프강은 난음악rep을 부르면서 아마데를 부둥켜안고 서로 울먹거림. 이 때 아마데 애기가 흡 하고 우는 소리가 볼프강 배우 마이크에 들어가서 더 슬퍼짐 흑.
볼프강의 마지막 넘버는 좋으나 싫으나 인생을 늘 함께 했던 두 사람의 완전한 이해이자 서로를 향한 마지막 작별인사 과정임. 아마데는 그동안 함께 했던 볼프강에게 볼에 키스를 한 뒤, 늘 들고다니던 소리굽쇠 펜으로 그의 심장을 찌름.

그리고 여기, 왕자는 왕이 되었어
그러나 그 무엇도 내게 남겨진 것은 없어
별들은 빛나지만,
나는 재가 되어 흘러내려

나는 장조 나는 단조
운율과 화음 그리고 침묵
멜로디와 마디,
포르테시모와 화음, 그리고 리듬

소리가 내 머릿 속에 반짝이며 맴돌아
거짓말이 아냐, 정말로.
이게 내 왕관이니까.

음악,
그것이 나...

사실 1막에서 볼프강은 진작 알아서 팔 걷어 아마데가 헌혈하게 뒀음. 헝가리판의 아마데는 볼프강이 승리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님. 헝가리판에선 볼프강에게 아마데는 유년기의 소중한 추억...아 헝가리판 롬쥴에서 192cm의 티발트가 인형붙잡고 내 소중한 추억 끼에엥 무대 기었던 게 생각나서 잠깐 멈칫... 설마 아마데에서 저거 가져온 거냐 의심 좀 했다가...

헝가리ver 볼프강은 자신의 유년기를 소중하게 여기나, 동시에 본인이 그 유년기의 기억에 붙잡혀 있단 것도 인식하고 절망하고 있음.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인정해주는 존재(아버지, 누나, 콘스탄체)에 의존적인 성향을 가졌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 있는 건 음악이자 아마데 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하고 운명 역시 자신의 삶이라고 받아들이며 죽는 이야기로 끝나기 때문임.

마지막에 아마데가 볼에 뽑뽀하는 것도, 그의 유년기이자 천재성이 인간 볼프강에게 보내는 애정의 보답이라. 묘하게 휴머니즘으로 끝남. 빈판-헝가리판 '모차르트! 모차르트!' 곡 순서가 달라진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음.




3. 모차르트의 신격화와 달라진 엔딩곡


넘버리스트 표를 만든 이유였기도 한데.. 헝가리판 빼고는 다 '모차르트! 모차르트!'가 모촤 사망 직전에 나오는 걸 확인해보려고...
초연 빈판에서는 해당 장면의 배경이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의 광장'으로 소개됨. 마치 짘슈의 슈퍼스타처럼, 주인공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의 형상으로 현대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음.
모차르트가 그렇게 떠나고 싶어하던 잘츠부르크를 보여주면서, 인물들은 모차르트의 초상화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서 예술가를 향한 찬송가를 부름. 이 장면은 천재를 향한 신성과 완벽에 대한 요약이나 거기에 인간 볼프강이 존재하지 않음. 모촤 죽기 직전 나오던 곡 제목 중 하나가 '신격화'였던 것도 인간 볼프강은 지워진다는 의미에서 붙여졌고.

15년 빈판에선 피아노 앞에서 작곡하는 볼프강과 아마데 뒤에서 인물들이 합창단처럼 등장함. 그리고 뒤 영상으로 모촤의 초상화, 모차르트가 썼던 편지와 18세기에 오페라를 올렸던 극장들, 현대의 오페라하우스로 이어짐. 과거에서 현대까지의 모습을 투영하는데 이는 모차르트를 향한 찬가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천재를 향한 고정관념의 강화로 끝남.


저기요 무덤밟고 계시잖아요 지금


그런데... 헝판에서 이 곡은 이미 모촤가 죽은 뒤 나옴. 이 때 등장하는 인물들은 위치조차 찾지 못한 작곡가의 무덤을 향한 추모곡처럼 부름. 실제 장례식에 오지 못했을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무덤에 꽃을 던지면서 요절한 천재를 찬양하기 위해.
곡 후반부에 이미 죽었던 볼프강과 아마데가 재등장하나, 볼프강은 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마데와 같이 갈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음. 볼프강은 아마데를 향해 손을 뻗으나 무덤에서 굴러떨어져 사라지고 아마데는 홀로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 지상을 떠남.


그런데 오? 막판까지 휴머니즘으로 가네? 싶었던 게... 무대 윗편에 등장한 아마데가 앙상블들을 지휘하며 인간 볼프강은 사라지고 영원히 남아있을 천재성으로 기억되는 듯 했으나... 아마데 뒤에 서있는 볼프강이 아마데와 함께 지휘함. 마치 그의 컬트적인 신격화를 끝내려고 하는 사람처럼. 사실상 운명에 굴복했더라도, 볼프강은 아마데와 같이 존재하며, 그의 천재성 뒤에 있더라도 인간 볼프강은 아마데와 함께 잊지 못할 존재로 남아있게 됨.
 
 

 
 
이날을 위해 엔딩곡까지 번역했다! 헝판에선 내운피가 피날레가 아니라, 모촤!모촤!가 피날레곡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고.


3. 모차르트의 '도자기 아이' 아마데
 


<모차르트!>에 나타나는 아마데의 모습은 하나의 농담에 가까움. 흰 색 가발에 붉은 코트를 입고 모차르트의 초상화와 똑 닮은 아이는 작곡가로서의 천재성, 재능, '도자기 아이 Porzellankind'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관광상품 중 하나인 '모차르트 쿠겔'의 초상화를 연상시킴. 초연이 시니컬했다는 이유도 아 님들이 아는 모차르트? 걍 얼굴만 남은 초상화잖아요ㅇㅇ 엘리의 키치처럼 무대 위에다 냅다 올려보내서 아니었을까.


빈판과 라센에선 볼프강의 마법같은 천재성을 오르골 상자로 보여주나, 헝가리에서 아마데가 늘 들고 있는 건 소리굽쇠임. 늘 들고 다니는 소리굽쇠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거나, 펜처럼 들고 다니며 작곡함. 아마데가 오르골을 열었을 때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 누구나 그의 재능과 음악을 공명해서 들을 수 있음. 볼프강이 아마데 방해한다고 장난삼아 빼앗거나,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쉬카네더가 소리굽쇠를 뺏어 볼프강을 방해하던 것처럼.



반면 볼프강의 현대적인 옷(빈판 초연에선 청바지와 레게 -> 15년이후 흰 후드티 + 워커 / 헝판에선 보헤미안 스타일의 코트와 심플한 셔츠)은 모차르트의 분열을 보여줌.

유령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했던 아마데의 유일한 순간은 제일 첫장면인 '이 아이 누구인가'임. 빈판~부다페 연출 땐 아픈 아마데에게 계속 연주하라는 레오폴트의 아동학대 장면이 나왔지만 15빈판에선 황후의 무릎에 뛰어들면서 모차르트의 통제불가능한 성질과 분열을 예고함. 사실 모촤네 가족은 가족여행 = 돈벌이까진 아니었지만 뮤지컬은 역사가 아니니!


헝가리판에서는 본인들이 캐해석한 볼프강은 몸만 큰 어린아이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첫 장면 이후 아마데의 그림자가 천천히 커지다가, 종이를 뚫고 워후! 튀어나오는 볼프강을 등장시킴.

초연 플북 설명글 보다 신기했던 게, 아마데의 첫 등장에 관한 설명이었음. '결코 해방되지 못할, 어린 시절과 똑닮은 내부의 자아 '아마데'를 발견한 모차르트는 놀라워한다.'
헝가리판에서 아마데의 첫 등장은 모차르트가 거울을 볼 때임. 그 둘은 거울상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투닥거리는 절친처럼 나옴. 레오폴트가 니 악보 어딨냐 잔소리할 때 도 제 머리에 있져ㅇㅇ 둘 다 동시에 머리를 가리키고. 헝판 모촤에선 볼프강이 부르는 모든 넘버들은 아마데 없이는 성립이 안되도록 안무를 짰음.



이건 여담인데 헝판 아마데는 재주넘기 겁나 잘 돌더라. 폴짝폴짝 뛰면서 볼프강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귀여움.
근데 2막 쯔음 모차르트의 환영 장면에선 모차 배우 밟고 재주넘기 하는 거 보면 에구머니나 싶어짐.
게다가 모촤 배우들도 아역 아마데 번쩍번쩍 들어야 하는 거 보고 어우 빡센데? 저렇게 굴리니 3년만에 돌하이가 득음해서 연기파 슈스가 되지.




헝모촤에 나오는 아마데 얘기 좀 더 하고 싶은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글에 계속.
원래 모차르트 주변 인물들의 얘기 하고 싶었는데 흑. 헝판 콜로레도는 성모 마리아의 헌신이니까요.



마무리로는 어.... 무럭무럭 자라 볼프강 배우들에게 효도하는 초연 아마데 아역들 좀 보고 가세요.

300x250

댓글